1.5세대의 낙서

Leap Year Proposal

CKChoi 2000. 3. 2. 16:46

새 천년에 들어서 맞이한 첫 2월 달은 윤달이었다. 2월 29일… 결코 흔하게 접해 볼 수 있는 날짜가 아니라서 왠지 모르게 공휴일(?)같이 특별함을 느끼게 해 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지만 윤년에는 하루를 덤으로 받은 기분이다.

예전에 엉뚱하게 2월 29일에 태어난 사람들은 생일을 어떻게 기념할까 생각해 봤다. 하루 앞당겨서 2월 28일을 생일이라고 할까? 아님 4년에 한번씩 생일 잔치를 할까? 정말로 4년 만에 한번씩 나이를 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별로 나이도 많지 않은 때에 (지금도 젊지만!) 괜시리 4년마다 한살이 는다면 좋겠다고 푸념조로 말한 것 보면 나도 좀 이상한 사람인가보다.

금년이 윤년이라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것이라 한다. 원래 윤년은 매 4년마다 찾아온다. 하지만 끝의 두 자리가 00으로 끝나는 해는 윤년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단, 예외는 있다. 끝이 00으로 끝난다 해도 만약에 400으로 나뉠 수 있다면 윤년이라고 한다. 그래서 1900년은 윤년이 아니지만 금번 2000년은 윤년이라는 사실이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400년 만에 처음으로 "00"으로 끝나는 해에 윤년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번 윤달에는 새로운 것을 배워서 무척 흥미로웠다. 남자가 여자한테 청혼을 해야 한다는 관례를 깨고 2월 29일에는 여자가 남자한테 청혼을 해도 괜찮다는 유래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다.

700년 전에 스코틀랜드에서 시작 했다는 설이 있는데, 윤년에 여자가 남자한테 청혼을 하면 그 남자는 거절을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거절을 안하는 것이라 못한다는 이야기는, 남자가 여자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면 많은 액수의 돈을 지불하거나 거창한 선물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들은 이야기인데, 스코틀랜드에서는 16세기 경에 2월 29일에 여자가 남자한테 청혼을 할 수 있다는 법안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남자는 거절시에 여자에게 키스와 비단옷과 장갑을 선물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지금 와서 보면 별것 아닌 물건이겠지만, 16세기경에 중국에서 넘어오는 비단은 무척 비싼 물건이였을게다.

점차 삶이 빡빡하게 돌아가고 메말라 간다고 느껴질 때, 위의 사실을 접해 보니 처음엔 어이없이 피식 웃고만 말았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꽤 재미 있는 관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직장에 있는 여직원 한 분도 자신이 2월 29일에 애인한테 청혼할 것이라고 발표(?)를 했으니, 이 Leap-year-proposal은 내 가까운 곳에서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2월 29일 아침,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차를 타고 출근길에 있었다. 보통 집에서 8시 조금 늦게 출발하면 직장에는 9시 전에 도착한다. 집을 출발하고 얼마 안 있어서는 차가 많이 막히기 때문에 난 보통 라디오를 들으며 간다. 호주에선 아침 방송을 꽤 재미 있게 하려고 한다. 아마 peak-hour 교통에 막히는 사람들의 짜증을 덜어줄려고 그러는가 보다. 게다가 아침 뉴스, 날씨, 혹 사고나 다른 일로 시드니의 어느 도로가 막히면 신속히 알려 주고, 경찰의 속도 카메라가 설치된 구간까지 알려 주니 유용한 생활 정보를 입수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

그날 아침은 윤달이라서 자신의 애인한테 청혼을 하고 싶은 여자들을 공개적으로 모집하고 있었다. 전화로 접수를 받고, 여자가 남자한테 전화를 걸어 청혼을 한다. 물론 청혼하는 것은 라디오 방송의 주파를 타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듣는다. 남자는 자신이 방송에 나오는 줄 모르고 이 황당한(?) 청혼 전화를 받는다. 가는 길에 3명의 여자가 전화로 자신의 애인한테 청혼하는 것을 들었는데, 3명의 남자 모두 "Yes!"라고 답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사랑의 결실을 맺은 것에 -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경청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 왠지 모르게 축하해 주고 싶었고 내 마음까지 흐뭇해 지는 것 같았다.

전화를 받은 남자들의 반응도 참 웃겼다. 한 남자는 여자의 청혼을 받고 전화상으로 약 1분간 조용히 침묵만 지켜서 듣는 자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 긴장감을 유지시키다 결국엔 "Yes!"라고 답을 했고, 어떤 남자는 여자의 결혼하자는 말에 대뜸 "언제?"라고 대답해 폭소를 유발시켰다.

3명의 여자들이 모두 청혼하는 것에 성공한 후 4번째 여자가 전화를 걸었다.
"네- 전화거신 분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Vanessa라고 합니다."
"누구한테 청혼하려고 합니까?"
"제 남자 친구 Steve요."
"두 분은 얼마간 함께 하셨나요?"
"3년간 사귀었어요."
"네~~~ 행운을 빌겠습니다!"
이윽고 남자한테 전화를 거는 톤이 들린다. 몇 번의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안녕 Steve! 나야!"
"어- 안녕?"
"내가 널 사랑하는 것 알지?"
(약간 멋쩍게) "음… 알고 있지…"
"난 너와 내 평생을 함께 보내고 싶어. Steve, 나와 결혼해 줄래?"
(Steve가 황당한 웃음 소리를 내더니 무척 조심스레 말한다)
"미안하지만, 너와 결혼 할 수 없어…"
[자- 이 순간에 저를 포함한 수많은 경청자들은 아마 약간 놀라서 라디오 볼륨을 조금 더 높였을 것 같습니다]
(여자, 놀란 목소리로)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휴우~~~(한숨) 실은 너한테 사실대로 이야기 했어야 했는데… 알맞은 때를 못 찾았어."
"무슨 이야기?"
"나… 실은 요즘 다른 사람 만나고 있어…"
[음… 이 순간에 전 제 귀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어이없는 웃음도 나오고요…]
(여자, 조용히 있다가 묻습니다) "누구인데…?"
(남자, 망설이다가) "… 네 친구 Lauren…"
[여자의 친구라는 말에 전 정말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결국은 여자가 약간의 욕설을 내뱉고 전화를 가차없이 끊었습니다.
듣는 저도 놀랐지만 방송을 진행하는 세 명도 모두 놀랐을 겁니다. 여자 진행자는 "아니… 이게 어찌 된 노릇입니까? 이거 정말 일어난 일 맞나요?"하고 묻고, 2명의 남자 진행자들도 어색한 헛기침만 내고 사태 수습에 안간힘을 썼죠. 결국은 노래 하나 내보내고 다시 그 여자한테 연락을 취해보겠다고 하고 넘어갔으나, 노래가 마친 후에 하는 말이 그 여자와 연락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2000년의 윤달에 4명의 여자 모두 행복한 결말을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네 번째 여자분한테는 무척이나 죄송한 말이지만, 아침의 그 색다른(?) 일로 인해 2000년의 2월 29일은 잊지 못할 해프닝 하나를 저에게 선사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들에게 덤으로, 선물 같이 받은 윤달의 2월 29일 - 그 날에 여자가 남자한테 청혼을 하는 것처럼 관례를 깨는 행동을 한다든가, 무언가 특별한 말과 행동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엉뚱한 행동이든 아니든, 평상시에는 안 해본 그 무엇인가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도 생각해 봅니다. 이런… 그러려면 4년이나 기다려야 하네… 게다가 이번 윤년은 400년 만에 찾아온 것인데… 굳이 윤년을 기다릴 필요 없이 매일 매일을 특별한 날로 생각해서, 특별한 행동 하나를 실천하고 산다면, 그것 역시 큰 욕심일까…?

참- 프로포즈 하겠다고 한 제 직장 동료 분은 어떻게 됐냐고요? 다음날 물어 보니 성공적(?)으로 임무 완성 했다고 하더군요… ^^ 미리 결혼식 하나 참석할 것 예약했습니다.

행복한 3월달 되세요-


'1.5세대의 낙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마 "허준"을 보며  (0) 2000.03.23
초보 영어 교사 (1) - 한국으로 가다  (0) 2000.03.21
이사가던 날  (0) 2000.01.19
Mr Eternity  (0) 2000.01.19
New Year's Eve (2)  (0) 2000.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