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의 교민 가정중 상당수가 고국에서 하는 여러 TV프로들을 비디오로 빌려서 봅니다. 어떤 가정은 일주일에 비디오 약 15-20편 정도 보니, 아침 드라마,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 오락 프로 등등을 어떻게 보면 한국에 계신 분들 보다도 더 많이 보시는 분들이 계실 줄로 압니다. 저희 가정은 그런 집과 비교할 때 정말 비디오를 보지 않는 집안입니다. 학생 시절 때 간혹 방학 기간에나 빌려 보았지, 장내의 화제작(?) 아닌 이상 비디오를 빌려보지 않습니다. 실제로 저희집이 유일하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본 비디오는 "모래시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전부터 저희 집에 비디오 열풍(?)이 오랜만에 다시 찾아왔는데, 바로 드라마 "허준" 때문입니다. 현재 20부까지 봤는데, 오래전에 읽은 이은성씨의 원작 "동의보감"을 영상으로 재현되어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중학교 학창 시절의 소설 "동의보감"은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나도 재미있게 밤 새면서 읽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만큼 절 빨아들인 책이였습니다. 동의보감의 저자로만 알았던 허준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 그의 부인으로 등장한 "다희"가 너무나 인상 깊게 저희 이상형같이 묘사되어서 세월이 지나었도 그녀의 이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볼 때도 극중 인물 다희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기 전에도 "아- 저 사람이 다희구나-"하고 미리 알아맞춰서 제 어머니의 놀라움(?)을 사기도 했죠.
책에서나 드라마에서나 허준은 놀라운 집념의 사나이, 어떻게 보면 세상과 타협치 않는 지독히 고지식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정말 사람이 어쩜 저렇게 복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동정심을 뛰어넘어 애처로운 눈초리로 그의 삶이 힘든 여정을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위에서는 온갖 시기와 질투와 멸시를 받고, 그가 조금만 잘 될려고 하면 꼭 일이 터져서 "이제 허준이도 좀 잘 되었으면…"하는 바램을 무참히 짓밟게되죠. 한국적인 소설은 보통 나중에 착한 사람이 잘되고 못된 사람이 벌을 받아 읽는 이가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권선징악적인 요소가 보이는데, 솔직히 소설 "동의보감"은 그런면이 별로 없습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예전에 읽은 원작도 생각이 나면서, 참 여러가지를 느꼈었는데, 그 중 몇가지만 적을까 합니다.
먼저, 허준의 주위에 있는 소위 "못된 사람들"을 보면 무척이나 화가 났습니다. 그냥 드라마를 보면서 "저런 나쁜놈!"하면서 화만 내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그런 모습이 한국인의 민족성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서 저의 고국의 민족성과 역사와 현재의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너무나도 배 아파하고, 모함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은 생각지 못하고 남을 시기하는데 급급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책임의 위치를 권력적으로 남용하길 좋아하고 남 위에 군림하기 좋아하는 모습… 실제 생활에서도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기에, 또 전에 제가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서 화만 나는 것이 아니라 한탄조로 한숨까지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왜 이럴까? 저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메아리 치듯 던지는 막막한 질문 앞에 되돌아오는 답은 없었습니다. 5000년의 한민족 역사와 되풀이되는 수많은 당파싸움, 삼국 통일이라 하지만 결국은 외국 세력(당나라)의 힘을 빌어 같은 민족에게 칼을 드밀고, 임진왜란 중에도 서로의 이익에만 급급해 싸움질이나 하고… 오죽하면 임진왜란 중에 최고의 수훈장 이순신 장군을 유배보낼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몇 년전에 이순신 장군의 "자살설"을 읽고 참 심정이 착잡했습니다. 그 설에 의하면 장군은 벌써 이미 자신이 남의 모함을 받은 일이 있기에, 임진왜란 후에 분명히 높은 치사가 내려질 자신에게 올 수많은 시기와 질투를 현명히 예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전투에서 명예롭게 전사를 하는 것이 낫게다 싶어 자신 앞에 놓여질 방어막을 모두 치우게 해서 결국은 왜군의 공격에 자신을 노출시킨 것이라 합니다. 이 설이 설득력있게 들린 것 자체가 서글프더군요. 한국의 위대한 발명가 장영실, 백두산을 수차례 오르내리면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혁명가 김옥균, 충신 사육신 - 이 외의 수많은 인재들이 모두 주위의 모함으로 피해를 봤습니다. 일제 시대 때에도 나라를 앞장서서 팔아먹은 사람들도 같은 한민족이였으며, 앞장서서 외국 세력과 대항한 김좌진 장군, 김구 선생 모두 다른 민족도 아닌 같은 민족의 형제가 죽였습니다.
허준이 잘 될 때 주위에는 그를 엄청나게 미워하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가 어떤 노력을 해서 성공하였는지는 보지도 않고, 자신의 불성실함은 생각치도 않은 채 말입니다. 그래서 "두고보자-"하는 식으로 원한을 품게까지 합니다. 한국이 제 고국이라서 제 민족의 잘못은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일까요? 저의 것은 다 좋았으면 하는 지나친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드라마에서 보이는 그런 모습들이 역사를 살펴보면 실제로 보이고, 멀리 볼 것 없이 현재도 그런 사람들이 보여서 처음에는 화가 나다가 서글퍼집니다.
물론 호주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호주에서는 그런 문제를 자신들이 정확히 꼬집어내서 문제 인식을 확실히 하고는 있습니다. 누가 잘되면 주위에서 그를 깎아내리는 것을 여기선 "Tall Poppy Syndrome"이라 합니다. Poppy는 양귀비같이 줄기가 긴 꽃인데, 다시 말해 양귀비처럼 꽃이 길게 자라면 그것을 꺾는 것을 누가 잘되면 남들이 깎아내리는 것과 비유해서 하는 말 같습니다. 그 현상을 세기의 무서운 질병AIDS(Auto Immune-System Deficiency Syndrome)와 같이 Syndrome(증후군)이라 부른 것은 특이할 만한 것이라 봅니다.
한국에서는 어떻습니까? 허준 드라마를 보면서 아마 "저런 저런… 끌끌끌… 하옇튼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본다니까…"하면서 혀만 찰뿐, 더다른 진보가 없이 그 선에서 멈춥니다. 그것을 민족적인 수치와 문제로 보고, 무엇무엇 증후군이라고까지 정의는 못 내릴 망정 확실한 문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전 봅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남을 시기하는 사람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국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독 한국에서는 그 경우가 더 심하게 보이고, 다른 민족들보다는 덜 그랬으면 하는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드라마상에서 보이는 그런 "못된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과연 저들의 모습을 보일 때는 없는지 스스로 반성조로 자문을 하였습니다. 내가 과연 "한국 민족은 왜…"하면서 화를 낼 자격이 있는지, 위선적인 모습은 없는지 뒤돌아 봤습니다. 저도 만약 그렇다면 손가락질 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보다 조금 낫다고 잘난척 하고 싶지도 않구요. 표현이 좀 그럴지도 모르지만, 만약 제가 그들보다 조금 더 낫다고 뻐긴다면 그건 마치 사람똥이 개똥보고 "넌 더러워"하는 꼴일겁니다. 실상은 똑같은 똥인데도 말입니다. ^^;;;
분명 제 마음속에는 남이 잘 될 때 약간의 시기 섞인 부러움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될 때 그들이 공들인 노력과 땀은 쉽게 떠오르지 않고 왜 나는 저들처럼 될 수 없을까 마냥 안타까워 할 때도 있었습니다.
간혹 우연히 생기게 된 인맥, 학맥과 지연을 내세우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한편의 드라마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절 화나게 만드는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저희 민족의 고질적인 Tall Poppy Syndrome에 한탄을 하게 되지만, 저 또한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지 하고 겸허히 반성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만 있을거라고 비뚤어진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전 한국 민족에게서 허준과 같은, 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훌륭한 사람들을 배출한 사실에 자랑스러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숨만 쉬게 만드는 민족성이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삼고, 그러한 사람들이 더더욱 많아지길 소원해봅니다. 저 또한 어린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누구 누구를 존경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여기듯이, 허준과 같은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을 조심스레 품어봅니다. ^^
허준이 의원이 아니면 다른 길이 없다고 여긴 것 같이, 저 또한 하나의 원대한 꿈을 가지고 그것만을 위해 살고 싶군요.
다른 사람들의 시기와 모함 속에서도 뜻을 굴하지 않고 꿋꿋히 살아간 그의 인생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제 삶을 감히 힘들다고 할 수 없고 앞으로도 감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 힘든 일은 모두 상대적인 것 같습니다. 주위의 더 불쌍한 이들을 기억하며 너무 자신에게 처량한 눈초리를 보내는 일이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한가지 더… "다희"같은 여성을 만나 그런 내조를 받아보며 제 꿈을 함께 이룰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한번 엉뚱한(?) 상상도 해 봅니다… ^^
1월의 마지막 월요일과 윤달이 낀 2월달 - 모두 행복한 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얼마전부터 저희 집에 비디오 열풍(?)이 오랜만에 다시 찾아왔는데, 바로 드라마 "허준" 때문입니다. 현재 20부까지 봤는데, 오래전에 읽은 이은성씨의 원작 "동의보감"을 영상으로 재현되어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중학교 학창 시절의 소설 "동의보감"은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나도 재미있게 밤 새면서 읽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만큼 절 빨아들인 책이였습니다. 동의보감의 저자로만 알았던 허준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 그의 부인으로 등장한 "다희"가 너무나 인상 깊게 저희 이상형같이 묘사되어서 세월이 지나었도 그녀의 이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볼 때도 극중 인물 다희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기 전에도 "아- 저 사람이 다희구나-"하고 미리 알아맞춰서 제 어머니의 놀라움(?)을 사기도 했죠.
책에서나 드라마에서나 허준은 놀라운 집념의 사나이, 어떻게 보면 세상과 타협치 않는 지독히 고지식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정말 사람이 어쩜 저렇게 복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동정심을 뛰어넘어 애처로운 눈초리로 그의 삶이 힘든 여정을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위에서는 온갖 시기와 질투와 멸시를 받고, 그가 조금만 잘 될려고 하면 꼭 일이 터져서 "이제 허준이도 좀 잘 되었으면…"하는 바램을 무참히 짓밟게되죠. 한국적인 소설은 보통 나중에 착한 사람이 잘되고 못된 사람이 벌을 받아 읽는 이가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권선징악적인 요소가 보이는데, 솔직히 소설 "동의보감"은 그런면이 별로 없습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예전에 읽은 원작도 생각이 나면서, 참 여러가지를 느꼈었는데, 그 중 몇가지만 적을까 합니다.
먼저, 허준의 주위에 있는 소위 "못된 사람들"을 보면 무척이나 화가 났습니다. 그냥 드라마를 보면서 "저런 나쁜놈!"하면서 화만 내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그런 모습이 한국인의 민족성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서 저의 고국의 민족성과 역사와 현재의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너무나도 배 아파하고, 모함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은 생각지 못하고 남을 시기하는데 급급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책임의 위치를 권력적으로 남용하길 좋아하고 남 위에 군림하기 좋아하는 모습… 실제 생활에서도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기에, 또 전에 제가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서 화만 나는 것이 아니라 한탄조로 한숨까지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왜 이럴까? 저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메아리 치듯 던지는 막막한 질문 앞에 되돌아오는 답은 없었습니다. 5000년의 한민족 역사와 되풀이되는 수많은 당파싸움, 삼국 통일이라 하지만 결국은 외국 세력(당나라)의 힘을 빌어 같은 민족에게 칼을 드밀고, 임진왜란 중에도 서로의 이익에만 급급해 싸움질이나 하고… 오죽하면 임진왜란 중에 최고의 수훈장 이순신 장군을 유배보낼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몇 년전에 이순신 장군의 "자살설"을 읽고 참 심정이 착잡했습니다. 그 설에 의하면 장군은 벌써 이미 자신이 남의 모함을 받은 일이 있기에, 임진왜란 후에 분명히 높은 치사가 내려질 자신에게 올 수많은 시기와 질투를 현명히 예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전투에서 명예롭게 전사를 하는 것이 낫게다 싶어 자신 앞에 놓여질 방어막을 모두 치우게 해서 결국은 왜군의 공격에 자신을 노출시킨 것이라 합니다. 이 설이 설득력있게 들린 것 자체가 서글프더군요. 한국의 위대한 발명가 장영실, 백두산을 수차례 오르내리면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혁명가 김옥균, 충신 사육신 - 이 외의 수많은 인재들이 모두 주위의 모함으로 피해를 봤습니다. 일제 시대 때에도 나라를 앞장서서 팔아먹은 사람들도 같은 한민족이였으며, 앞장서서 외국 세력과 대항한 김좌진 장군, 김구 선생 모두 다른 민족도 아닌 같은 민족의 형제가 죽였습니다.
허준이 잘 될 때 주위에는 그를 엄청나게 미워하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가 어떤 노력을 해서 성공하였는지는 보지도 않고, 자신의 불성실함은 생각치도 않은 채 말입니다. 그래서 "두고보자-"하는 식으로 원한을 품게까지 합니다. 한국이 제 고국이라서 제 민족의 잘못은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일까요? 저의 것은 다 좋았으면 하는 지나친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드라마에서 보이는 그런 모습들이 역사를 살펴보면 실제로 보이고, 멀리 볼 것 없이 현재도 그런 사람들이 보여서 처음에는 화가 나다가 서글퍼집니다.
물론 호주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호주에서는 그런 문제를 자신들이 정확히 꼬집어내서 문제 인식을 확실히 하고는 있습니다. 누가 잘되면 주위에서 그를 깎아내리는 것을 여기선 "Tall Poppy Syndrome"이라 합니다. Poppy는 양귀비같이 줄기가 긴 꽃인데, 다시 말해 양귀비처럼 꽃이 길게 자라면 그것을 꺾는 것을 누가 잘되면 남들이 깎아내리는 것과 비유해서 하는 말 같습니다. 그 현상을 세기의 무서운 질병AIDS(Auto Immune-System Deficiency Syndrome)와 같이 Syndrome(증후군)이라 부른 것은 특이할 만한 것이라 봅니다.
한국에서는 어떻습니까? 허준 드라마를 보면서 아마 "저런 저런… 끌끌끌… 하옇튼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본다니까…"하면서 혀만 찰뿐, 더다른 진보가 없이 그 선에서 멈춥니다. 그것을 민족적인 수치와 문제로 보고, 무엇무엇 증후군이라고까지 정의는 못 내릴 망정 확실한 문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전 봅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남을 시기하는 사람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국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독 한국에서는 그 경우가 더 심하게 보이고, 다른 민족들보다는 덜 그랬으면 하는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드라마상에서 보이는 그런 "못된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과연 저들의 모습을 보일 때는 없는지 스스로 반성조로 자문을 하였습니다. 내가 과연 "한국 민족은 왜…"하면서 화를 낼 자격이 있는지, 위선적인 모습은 없는지 뒤돌아 봤습니다. 저도 만약 그렇다면 손가락질 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보다 조금 낫다고 잘난척 하고 싶지도 않구요. 표현이 좀 그럴지도 모르지만, 만약 제가 그들보다 조금 더 낫다고 뻐긴다면 그건 마치 사람똥이 개똥보고 "넌 더러워"하는 꼴일겁니다. 실상은 똑같은 똥인데도 말입니다. ^^;;;
분명 제 마음속에는 남이 잘 될 때 약간의 시기 섞인 부러움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될 때 그들이 공들인 노력과 땀은 쉽게 떠오르지 않고 왜 나는 저들처럼 될 수 없을까 마냥 안타까워 할 때도 있었습니다.
간혹 우연히 생기게 된 인맥, 학맥과 지연을 내세우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한편의 드라마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절 화나게 만드는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저희 민족의 고질적인 Tall Poppy Syndrome에 한탄을 하게 되지만, 저 또한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지 하고 겸허히 반성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만 있을거라고 비뚤어진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전 한국 민족에게서 허준과 같은, 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훌륭한 사람들을 배출한 사실에 자랑스러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숨만 쉬게 만드는 민족성이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삼고, 그러한 사람들이 더더욱 많아지길 소원해봅니다. 저 또한 어린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누구 누구를 존경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여기듯이, 허준과 같은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을 조심스레 품어봅니다. ^^
허준이 의원이 아니면 다른 길이 없다고 여긴 것 같이, 저 또한 하나의 원대한 꿈을 가지고 그것만을 위해 살고 싶군요.
다른 사람들의 시기와 모함 속에서도 뜻을 굴하지 않고 꿋꿋히 살아간 그의 인생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제 삶을 감히 힘들다고 할 수 없고 앞으로도 감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 힘든 일은 모두 상대적인 것 같습니다. 주위의 더 불쌍한 이들을 기억하며 너무 자신에게 처량한 눈초리를 보내는 일이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한가지 더… "다희"같은 여성을 만나 그런 내조를 받아보며 제 꿈을 함께 이룰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한번 엉뚱한(?) 상상도 해 봅니다… ^^
1월의 마지막 월요일과 윤달이 낀 2월달 - 모두 행복한 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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