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 글에서 계속 이어 갑니다…혹 처음 오신 분들은 글의 이해를 위해 "칼럼 목록"에 가셔서 앞의 글을 먼저
읽어 주시면 감사 드리겠습니다.>
미국인 Barbara가 교육원에 간다고 했을 때 솔직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자리에 아마 저희들 누구도 그와 함께 일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2주의 짧은 연수 기간에 Barbara는 벌써
"괴짜"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방을 쓴 여자들에 의할 것 같으면 도저히 같이 어울릴 수 없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그
악명(?)을 익히 들은 바라 그 사람을 일부러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교육원이 주로 교사들을 대하는 곳이란 말에 웬지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전에 원어민 교사를 한 교포 출신들에 의할 것 같으면, 한국이란 사회는 아직 연배나 나이를 매우 중요시 하기에,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들 앞에서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외국에서 능력을 더 중요시 여기는 풍토에 익숙한 그들은 그것을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전 얼굴이 동안이라 아직도 십대(?)로 착각을 받습니다. (아니면 저만의 착각일수도? ^^) 게다가
한국에 일하던 당시 한국 나이로 25세였습니다. 한국적 상황이라면 아직 군대에 있거나 막 제대하여 대학 다닐 나이입니다. (물론 제가 고위층
아들이었다면 상황이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찌 보면 새파랗게 젊은 제가, 나이 지긋이 드신, 교사 경력 20년 정도의 선생님들 앞에서
뭔가를 가르친다는 것에, 그들이 불쾌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너 같은 아들이 있어~~!"하는 소리 들을지도 모르는
일 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간혹 있는 교사 연수에서 위와 같은 곤욕(?) 치르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만약 교육원에서
근무하면 교사 연수가 더 많이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이르자 교육원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Barbara가 교육원에 간다 하니 더더욱
교육원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어느 학교가 좋을까…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고등학교? 고등 학생들 이라면
저와 나이차가 10년도 안 나기 때문에 그것이 좀 마음에 걸렸습니다. "요즘 애들 무섭다는데… 어쩌지? 나와 맞먹으려고 대들면?" 이런 생각이
나자 고등 학교도 썩 내키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김종태 장학사님이 제안한 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여자
고등학교"였습니다.
여고…? 이것 역시 경험자들에게 들은 이야기였습니다만, 여고는 젊은 총각 선생에겐 즐거운(?) 장소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매우 고달프고 힘든 곳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민감한 시기에 있는 학생들에게 행동을 잘못하면 큰 오해를 살 수가 있고,
잘못했다가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만한 스캔들(?)에 휘말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제가
조언을 구하러 다니던 대상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썩 낙관적인 말을 해 준 것 같지 않습니다. 똑같은 사연이라 해도 염세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엔 전 정식 교사 경험도 없었을 뿐더러, 고국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외국 땅과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낯설은 곳으로 여겼기에,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을 먼저 밟은 그들의 말을 매우 중요한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고등학교도 갈
곳이 못 된다고 판단하여 중학교는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김 장학사는 원어민 교사가 일할 수 있는 장소의 선택에서 중학교는
제하였습니다. 그렇게 되고 보니 마지막 남은 선택은 초등학교 밖에 없었습니다.
골똘히 생각을 해 보니, 초등 학생들은 무척이나
순수하고, 고등 학생들과는 달리 머리가 아직 크지 않았기에(?) 덜 반항기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나이가 더 많은 고등 학생들이나 교사들 가르치는 것보다는 더 수월하게 보였습니다. 초등 학교 학생들은 영어에 대해서 잘 모를 테니
그들이 물어 보는 질문 또한 쉬울 것 같다 라는 안일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는 영어의 세계에 첫걸음을 딛게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보람도 더 클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한 다른 4명의 원어민 교사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모두 초등학교에 가겠다고 자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은 4명 모두 한국 교포라서 교육원을 멀리하고픈 마음은 모두 다 가졌을 것
같습니다. 김 장학사도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4명 모두 초등학교에 갈 수 없으니 다들 조금씩 양보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평소에는
저 양보 잘 하는 착한 사람입니다. ^^ 하지만, 이 문제는 제가 1년 동안 근무하는 곳을 정하는 것 이었기에 저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도 고집(?)을 꺾지 않더군요.
호주에서 함께 온 Karen이 입을 열었습니다 - "전 호주에서 초등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기에 아이들과 경험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전 여기서도 꼭 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고 헉-하고 놀랐습니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미국 New York에서 왔다는 박성아 씨(한국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쓰고 있었음)가 말을
이었습니다 - "저도 미국에서 유아 교육의 석사 과정을 밟았기에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것이 제게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이 이 쯤
되자 전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습니다. 두 여자 원어민 교사들의 발언으로 인해 제 입지(?)는 무척이나 좁아지고 말았습니다. 그분들처럼 제가
초등학교에서 일해야 한다는 자기 PR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저에겐 없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미국에서 온 John 형을 슬쩍
바라보니, 그 형도 저와 같이 당황스런 눈빛을 보내 줬습니다.
상황이 저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 되어질 때, 김 장학사님이
마지막으로 저희들 마음을 돌이켜 보고자 고등 학교와 교육원의 장점들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를 깜짝 놀라키게 한 발언을
장학사님이 하셨습니다.
"…울산 교육원도 그리 나쁜 근무지는 아닙니다. 전에 한번도 원어민 교사를 받아 본 적이 없기에 여기에
가시는 분은 교육원의 첫 원어민 교사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치도 얼마나 아름다운 곳에 있는지 모릅니다. 바로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으며,
뒤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한 곳입니다. 울산에서 알아주는 관광 명소인 방어진의 울기 공원 바로 앞에 자리 잡혀 있습니다.
"
방어진…? 방어진?!?! 방어진이라 했단 말인가???
전 제 귀를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쭉 울산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만 듣다가, 저에게 처음으로 울산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준 캐나다의 Sonia에 의할 것 같으면 울산의 방어진이라는 곳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라 했습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꼭 거기에 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거기에 애착을 느꼈습니다.
울산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지만 "방어진 = 좋은 곳"이라는 단순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고, 할 수만 있다면 그 근처로 가야겠다고 내심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교육원이 방어진에 있다는 장학사님의 말을 듣고 가슴의 고동 횟수가 빨라졌습니다. 전 다시 한 번 확인을 해 보고자 김 장학사님께
물었습니다.
"교육원이 방어진에 있다고 하셨습니까?"
김 장학사님도 저를 보시고 어쩌면 4명 중 한명의 마음을
돌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그렇다고 대답하시고 다시 한번 교육원의 좋은 점들을 나열하셨습니다.
괜히 다른 사람이 교육원의
좋은 설명을 듣고 저보다 먼저 선수를 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제가 재빨리, 두 번 더 생각지도 않고 말하였습니다 - "제가 교육원으로
가겠습니다!"
아무리 괴짜라고 소문난 Barbara와 함께 일해야 한다 해도 견딜 수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보다는
교사들을 대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일이 더 까다롭고 힘들지는 몰라도 그것 또한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울산에서 일년간 살면서 근무해야 하는데, 울산에 대해서 유일하게 좋은 이야기를 들은 곳은 그 방어진이라는 곳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차피 울산에 가야 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어진에 가야할 것 같은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일년간 근무하게 된 울산 교육원에 가게 된 이유는, 그렇게 싱겁게 끝났습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와 판단으로
내린 결정도 아닌, 단순히 "방어진"에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전 울산 교육원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양보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장학사께서 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제 이름을 울산 교육원 칸에 써 주셨습니다.
하지만 속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웃는 것은 저였답니다. 울산에 가게 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도 그 때부터였다는 것은, 묻지 않아도 여러분도 잘
아시겠죠?
<사진 - 98년 EPIK (English Program In Korea) 멤버들. 한국 교원 대학교에서
장학사들과 대면식을 가진 후 찍은 단체 사진입니다. 저는 어디에 있냐고요? 헤~ 당분간 비밀로 하겠습니다...
^^>

'1.5세대의 낙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보 영어 교사(4) - 울산의 1.5 세대들 (0) | 2000.04.14 |
---|---|
초보 영어 교사 (3) - 제3고향, 울산 (0) | 2000.04.06 |
드라마 "허준"을 보며 (0) | 2000.03.23 |
초보 영어 교사 (1) - 한국으로 가다 (0) | 2000.03.21 |
Leap Year Proposal (0) | 2000.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