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가게 된 원어민 교사는 저까지 포함해 총 5명이었습니다.
미국 New York에서 건이 형 (John),
박성아, Barbara, 그리고 호주 시드니에서 온 Karen누나와 저였습니다. 그 중 Barbara만 제외하고 모두 한국 교포 젊은이들, 다시
말해 1.5 세대들 이었습니다.
Karen 누나는 시드니에 있을 때 얼굴 한번 못 본 사람이었지만, 그녀의 오빠 되는 Kevin
형하고는 좀 아는 사이라 이야기로만 들은, 신비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제 친구의 대학 선배이기도 해서 제가 원어민 영어 교사
프로그램(EPIK)에 참석한다니까 그 친구는 "어? Karen 누나도 간다는데?"해서 그 분도 가는구나 하고 짐작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Karen 누나도 저와 비슷하게 저에 대해서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합니다. 한국
교원대에서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고도 우린 전에 서로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좀 있길래 첫 대면 같지 않게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So… you're David?"
(음… 네가 David이니?)
"Yeah- and I guess
you're Karen! I've heard so much about you."
(네- 누나가 Karen이군요! 누나에 대해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Same here. I feel like I know you already!"
(나도 마찬가지. 널 벌써 알고 있는 것
같아.)
"(laughing) Yeah- I do too! It's funny we never got to see each other
until we arrived in Korea."
(웃으면서 - 나도 그래요. 웃기죠?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서로 한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Karen 누나는 무척 시원 시원한 성격이었고, 활달한 성격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화도 무척 생기 있게 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유쾌해 졌지요.
박성아… Sung-Ah Park. 미국에는
아마 4살쯤인가 이민 갔는데, 영어 이름을 안 짓고 자신의 한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 이민 가서 그런지 Karen누나와
John 형과는 달리 한국말을 거의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이는 저보다 나이는 많지만 한번도 누나라고 불러 보지 못하고 영어로 Sung-Ah로
불러 호칭하였습니다.
성아는 목소리가 매우 청아하고 또박또박하게 말을 했습니다. 만약 눈을 감고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 CNN에
나오는 뉴스 앵커가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 목소리라 매우 뚜렷했습니다. TV에서나 보던 미국식 발음을 제가 피부로 느끼게 해주던
사람이었습니다. 동양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영어를 못할 것이라고 내심 짐작하는 백인들도 그녀의 뚜렷한 목소리에 혀를 내두를 정도
였으니까요.
John형은 한국 교원대에 저녁 늦게 도착을 하였습니다. 저는 여유 있게 연수 시작 하루 전에 도착하여 사람들도
만나고, 학교 주위도 돌아 보고 그러했는데, 옆 방에 사람 한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길래 누굴까 궁금해 했었던게 생각 나네요. 그게 바로
John 형이었습니다.
이름은 외자로 허 건… 그러나 보통 John형이라고 부르는 게 더 편하더군요. 처음 봤을 때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그런 얼굴이었습니다. 분명 나보다 나이는 더 많을 텐데, 정확하게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 말을 걸어 보니 너무 목소리가 조용하고
차분하여 귀를 바짝 대고 들어야 잘 들렸습니다. 그런데 형 입에서 나오는 미국 영어 발음… 음… 역시 호주 영어와 달리 R 발음을 엄청
굴리더군요. 그거 아시나요? 같은 미국이라도 동부, 서부, 남부에 따라 말하는 스타일과 발음이 다르다는 것을? 형은 전형적인 미국 동부 지역의
영어를 했습니다.
나중에 형 나이가 66년 생이라는 것을 듣고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 하다가 한국에 온 노총각(?)이었는데, 나중에서야 형이 한국에 온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신부(!) 찾기에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아니 형- 미국은 교민 수가 호주보다 훨씬 더 많을 텐데, 거기도 그렇게 결혼 배우자 찾기 힘들어요?"
"내가 왜
한국에 왔는데… 미국에서는 내가 안 찾고 있었는 줄 아니?"
물론 여자 찾으려고 온 것이 제 1 목적은 아니었지만, 형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괜히 쓸데없이 여자 보는 눈이 너무 높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John 형은 너무 눈이 높더군요. 그러면 평생 장가 못 간다고 위협(?)해도 제 조언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형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도 순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 John 형을 순하다, 조용하다, 소심하게 보인다고 평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수록 형의 무척 재미있는 면들도 보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카페를 갔는데 커피 이름 중에 "허쉬자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 허쉬자바? 형- 이 허쉬자바가 무슨 커피인지 알아요?"
그러자 전혀 상상치 못한 형의 엉뚱한 대답:
"뭐?
허씨 잡아?!?! 왜 허 씨를 잡아?!?!"
형의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까지 곁들여져 같이 간 일행들을 폭소로 이끌었습니다. (형의 성은 허
씨입니다…)
저희들 한국 교포들은 울산에 살면서 시간이 나는 데로 보자고 약속 했지만, 뭐가 서로 그리 바쁜지 자주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번씩 자신들이 사는 집으로 초대해서 자신이 사는 모습도 공개하고, 조촐한 저녁 식사를 가진 시간들은 가졌습니다. 맨 먼저
Karen 누나 집으로 초대하여 성대한 Italian 음식을 먹었고, 제 집에서는 피자를 시켜 먹었고, 성아네 집에서는 자신이 직접 만든 한국
음식을 먹었고, John 형 집에서는 분식집에서 음식을 시켜 먹었습니다.
저희들은 서로 이야기하면 참 잘 통했습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고, 서로 가르치면서 느낀 애로 사항들도 쉽게 마음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보면 저희들 눈에 비친 이해할 수 없는
한국 사람들의 행동과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어렵지 않게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하고 있을 때는 참 마음이 편했습니다.
한국이 비록 고국이지만, 저에겐 외국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같은 피부, 같은 언어를 하는 민족만 주위에 있었지만 호주에서
호주인 들과 느끼던 이질감과는 또 다른 이질감을 간혹 느꼈습니다. 하지만, Karen, Sung-Ah, John과 있을 때는 참 마음이 편하고
대화가 쉽게 잘 됐습니다. 제가 "어-"하면 그 쪽은 너무나도 장단에 잘 맞추어서 "아-" 해 주었죠.
간혹 그들과 같이 다니면서
영어로 대화를 할 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 보아도 저희들이 같이 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 기(?) 죽지 않고 계속 자연스레
영어로 대화를 하곤 했습니다. 혼자였다면 절대로 영어 안하고 다녔을 텐데 말입니다.
Karen 누나는 계약 말기에 한국에서 만난
건실한 청년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 때에도 울산의 1.5세대인 저희들은 함께 결혼식장으로 가서 축하해 줬습니다. 모두들 Karen의
화사한 신부 복장에 감탄을 하였죠. 아마 John 형은 은근히 착잡했을 거라는 생각도 지금 드네요… ^^ 정말 결혼할 사람은 John 형이었는데
말이죠…
이 글을 쓰면서 문득 함께 호주에서 한국에 갔던 교포들이 생각 나네요.
충청도 서산에서 근무했던, 수염이
덥수룩하게 났던 Hubert 형… 유일한 유부남이라 부인과 동행했던 무척 재미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연수 기간 중 저와 한 방을 썼던 사람이기도
하죠. 서산 교육청 측에서 수염을 깎으라고 한 것을 끝까지 안 깎아서 신조(?)를 지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강원도 철원에서 근무했던
민진이… 시드니에서 친구의 친구로 몇 번 만나서 안면이 있는 동갑 내기였습니다. 철원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땅굴 견학 갈 수 있어서
얼마나 좋겠냐고 놀려 댔었는데… 철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자 친구와 사귀게 되었다는 소식 들은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대한
민국에서 독도 다음으로 제일 외진 강원도 고성으로 가게 된 좌현정 씨… 이 분도 솔직히 시드니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어 안면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민진이와 이 분을 만나서 상당하 놀랐습니다) 한국에 왔을 때는 강원도에 간다는 줄로만 알았지 어느 도시인줄 몰랐다가, 장학사와
대면 후 고성이라는 것을 처음 발견 했답니다. 어디인지 몰라서 지도를 보고 휴전선 바로 밑에 있다는 것을 본 후 너무 놀라 눈물을 흘렸을 때
우리 모두 다 안타까워 했습니다. 처음엔 호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연수가 끝마칠 즘에는 일행으로부터 간첩 보면 꼭 신고해야 한다는
농담을 넉살 좋게 받아 넘기게 되었죠.
아직 한국 교원대에서 근무 중인 재준이… 항상 밝은 웃음으로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사귄 지 일년 정도 된 남자 친구와 곧 결혼할 지도 모르는데… 남자 친구 자랑하면 정말 닭살 돋아서 못 듣게 되죠.
^^
위의 사람들 외에도 미국에서 온 Alix, Dale, Yulgene, Canada에서 온 James, Yulie,
Anthony, 그리고 나에게 울산의 방어진을 가르쳐 준 Sonia… 모두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EPIK을 통해 만나게 되었고, 알게
되었고, 지금은 연락이 잘 안 되지만, 항상 서로를 아련한 추억의 그림자로 기억을 하고 있을까… 나처럼 고국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고,
근무했던 곳을 한국의 제 2고향으로 느낄 만큼 그런 애착심을 품고 한국을 떠날 수 있게 되었을까… 오늘 문득 그리워 집니다. 호주는 가을이라서
아마 제가 가을 타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
행복한 추억이 있고, 미소 지으면서 떠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축복인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그러한 추억을 더하고, 그러한 사람들을 더 만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내일도 그러한 것들을 소망하며 살아가기를,
피곤한 가운데 하루를 접으며 조용히 소원해 봅니다.
행복한 추억이 될 수 있는 하루 되세요-
[사진 설명] 한국
교원대에서 울산에 가게 된 원어민 교사 일행과 함께.
왼쪽부터 Karen 누나, Sung-Ah, Barbara, 김종태 장학사님,
Canada에서 온 원어민 교사 2년차 Paul Dobson, 저 (악- 제 모습을 공개하는군요!), 그리고 John
형.

'1.5세대의 낙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질감 속의 이질감 (0) | 2000.07.18 |
---|---|
초보 영어 교사 (6) - 내가 본 학생들 (0) | 2000.06.09 |
초보 영어 교사 (3) - 제3고향, 울산 (0) | 2000.04.06 |
초보 영어 교사 (2) - 교육원에 가게 된 연유 (0) | 2000.03.27 |
드라마 "허준"을 보며 (0) | 2000.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