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대의 낙서

New Year's Eve (2)

CKChoi 2000. 1. 7. 08:21

<전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혹시 오랜만에 오셨거나 처음 오신 분들은 죄송스럽지만 전 글을 읽고 여기 다시 오시면 좀 더 앞뒤가 맞는 글이 될 것 같네요... ^^>


바로 다음날인 12월 31일은 12시에 퇴근해서 후배 중 한명인 동균이, 그리고 절 전화한 윤희와 한국에서 왔다는 친구 진실이를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고, 새로 이사한 집 구경도 시킬 겸 저희 집에 와서 잠깐 있다가 집 근처의 역에다가 차를 세워두고 시내로 가는 전철을 탔습니다.

오페라 하우스(Opera House)와 하버 브릿지(Harbour Bridge)가 보이는 Circular Quay역에 도착하니 4시 30분경이였습니다. 전망 좋은 곳에서 자리를 탁 잡았습니다. "와~~~ 명당이다~~~ 역시 일찍 오길 잘했어~~~"하고 신나하는 것도 잠시… 아무리 불꽃 놀이가 좋다지만 9시에 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4시간 이상이나 시간이 남았습니다. 저와 동균이가 아무리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건 무리라서, 명당(?) 자리에서 일어나서 시내 쪽의 Chinatown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저의 다른 후배 영신이를 만나서 같이 저녁 먹고 원래의 장소로 걸어갔습니다.

걷고 싶어서 걸은 것이 아니라 차량 통행을 막아놔서 평상시에는 많은 차들이 지나가는 시내의 중심 거리를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참 기분이 묘하데요… 원래는 차들이 다니는 자리에 저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걷고 있어서… 그냥 이유없이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았고,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그것마저 즐기고 싶었습니다.

원래의 자리로 오니 7시 30분… 당연히 저희들이 처음 있던 자리는 다른 사람들의 자리가 되어 있었고, 그때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에 뉴스에서 한 기자가 한 예언(?)은 노스트라다무스의 그것처럼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년전의 인파와 별 다를바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언론에서 하도 떠들썩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안 온 모양입니다. 하긴 저도 원래는 오지 않을려고 했는데…

한시간 반 동안 저희 일행 다섯은 앉은 자리에서 카드 게임하고, 농담도 주고 받고, 전통 한국 게임(?) "제로"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개그맨 동균이와 썰렁맨 영신이가 또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었죠. 물론 저도 한 몫하고…

드디어 기다리던 9시 불꽃 놀이!!! 그런데… 겨우 10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까?!?! 조금 멋있는 장면들이 있긴 했지만 제가 보기엔 너무나도 시시하게 끝났습니다. 2년전에 봤던 하버 브릿지에서 멋지게 쏘아 올린 폭죽도 없었고… 특히 한국에서 놀러온 진실이한테 오늘밤 아주 멋진 구경하게 될꺼라고 바람도 잔뜩 넣었는데… 순간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이런 거 볼려고 온 것이 아닌데… 정말이지 수상 전화 번호라도 알고 있었으면 전화해서 따지고픈 억지스런 화까지 났습니다. 너무나 억울해서 원래는 계획에도 없던 12시 자정 불꽃 놀이마저 보기로 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는 보기가 뭐해서 동균이 말로는 더 잘 보인다는 North Sydney역으로 갔습니다. 거기에 도착하니 10시 30분 -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저희들도 괜찮은 곳에 자리 잡고 간식 먹고, 놀이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날 괜히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서 이런 위로도 했죠 - "20년 후에는 내가 시드니 항구에 요트 띄워서 편하게 구경하게 해줄게!" ^_^;;;

그러자 다들 "윽! 20년후?! 그때 우리가 몇살이야?!?!" 저도 생각해보면 까마득한 먼 훗날처럼 보입니다. 20년후… 헉- 한국 나이로 46살이네?!?! 순간 현기증이 나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만24년을 살아왔는데, 24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 같지 않더군요. 고등학생 시절이 엊그제 같고, 중학생 시절이 엊그제 같은게 엊그제 같고, 초등학생 때가 몇주전 같은데… 저보다 나이 드신 분들께는 매우 죄송한 말씀이지만, 정말 몇일 밤 잔 사이에 그 순간에 도달한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만 24년의 세월이였는데… 앞으로 20년은 제가 금방이라고 생각한 것보다 더 짧은 순간이더군요. 그럼 그것도 결코 먼 미래는 아니였습니다.

전 자정을 앞두고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설레이면서도 서글픈 것 같고, 후회도 많은 것 같지만 앞날의 소망도 있었고, 아쉬움도 남는 것 같으면서도 기대감도 있었고… 괜시리 심호흡을 계속 했습니다. 마치 그 순간을 더 오래 간직할려고 하듯이 숨을 계속 깊게 들여 마셨습니다. 하지만 부질 없는 짓이였습니다. 제가 빨아들이는 1999년도의 공기, 그때의 분위기, 그 순간들… 모두 들이마시는 순간 과거라는 존재로 제 안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Ten, nine, eight… 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습니다. 카운트다운 숫자가 보이는 커다란 조명이 시내의 고층건물에 비추어져서 사람들이 모두 다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three, two, one… HAPPY NEW YEAR!!!!!!
모두 환호성을 불렀습니다. 저도 좀 전의 묘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순간을 뒤로 접히고 같이 환호성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나서… 멋진 불꽃 놀이가 약 30분간 펼쳐졌습니다. 이번에는 저를 실망시키지 않을 정도로 참 멋지게 하늘의 축제가 제 눈 앞에서 열렸습니다. 씌이이잉~~~ 퍼~어~엉~~~ 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 하늘은 참 이쁜 모양으로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리고나서 들리는 사람들의 탄성 소리… "와~~~" "우와아~~~" 마치 누군가가 하늘에 환한 빛으로 수를 놓고 몇초만에 풀고, 다시 새로운 모양으로 수를 놓고, 또 풀고…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제일 큰 탄성을 자아나게 한 폭죽들은 다른 것 보다 높이 올라가서 멋진 모양으로 크게, 넓게 터지는 것들이였습니다. 그것들은 벌써 터질 때 다른 것들보다 소리가 몇배 더 크고 웅장하게 들렸습니다.

그래… 나도 내 인생을 한번 멋지게 높이 쏘아 올려보자. 높이 올라가는 폭죽은 자연스레 큰 소리가 난다… 꿈을 높게, 원대하게 가지면, 크게 되는 것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제일 멋진 피날레는 역시 하버 브릿지였다. 다리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속사포처럼 연속적으로 계속 쏘아 올려져서 밤하늘을 환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나서 다리 밑으로 마치 폭포같이 환한 빛가루들을 바다물 위로 뿌려놓고, 다리의 한가운데는 귀여운 스마일이 그려져 있었다. 마지막 한순간에 다리 윗부분이 무지개 색깔을 내뿜으면서 큰 소리로 터졌다. 그리고 나서 스마일 얼굴 위로 한 단어가 불이 들어왔는데, 그 단어는 바로 "Eternity" (영원).

아주 오랜 옛날에 한 노인이 시드니 길위에 분필로 그 단어 Eternity를 죽을 때까지 매일같이 똑같은 글씨체로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왜 그가 그랬는지는 정확히 아무도 모르지만, 여러가지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은 사라지는 존재지만 시드니는 영원하다는 것, 시드니의 아름다움은 영원하다는 것… 아니면 그 영원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새천년으로 들어가면서 크게 하버 브릿지 위에 그 단어 Eternity가 새겨진 것 또한 여러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세기를 넘어 왔듯이 시드니는 이 밀레니엄에도 영원할 것이다… 아니면 영원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늙고 사라지지만, 누구나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영원히 살 수는 없어도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거나, 자신의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것을 Legacy라도고 하죠. 역사에 보면 많은 왕들이, 커다란 왕국들이, 웅장한 탑, 무덤, 비석등을 세워서 자신의 존재를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을 비쳤습니다.

저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어서 어렸을 적에는 이런 꿈도 가졌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어린 학생들이 내 위인전을 읽게 될거야… ^^ 내 동상 하나쯤이 도심 어딘가에 세워질거야… ^_^;;; 무엇인가 특별한 존재이고 싶고, 특별하게 기억되고 싶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평범함을 발견하면 할수록 우리들의 꿈은 움츠러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보면 폭죽같이 잠시 하늘을 수놓고 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주의 수백만 광년이라는 시간 앞에 인간의 수명은 얼마나 부질없게 짧은 시간인지… 그렇게 보면 폭죽처럼 아름답게, 저희들이 지나가는 삶이라는 하늘을 수놓고 싶군요. 이왕 사는 거, 높이 솟아 올라서 아름답게 하늘을 장식하고, 한번 큰 소리 펑-내고 사라지고 싶군요…

새해의 작지만 커다란 소원입니다.

회원님들- 행복한 2000년이 되시길 바라며, 다양한 복 받는 한 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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