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호주 시드니의 시간은 새벽 1시 30분경... 잠이 오지 않는군요. 너무나도 원통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서... 방금 멜들 확인하고, 답장 쓰고, 다른 칼럼들 몇군데 들렸다가 무거운 가슴을 이끌고 여기로 왔습니다.
오늘, 아니,
이제 자정이 넘었으니 어제군요... 어제 1999년 11월 6일은 역사적인 날이였습니다. 호주에서 아주 중요한 국민 투표(Referendum)가
열렸습니다. 국민 투표에 부쳐진 안건은 "호주가 영국 여왕을 국가 원수로써 버리고 호주인 대통령을 국가 원수로써 하는 공화국이 되어야하는가?"에
찬성, 반대의 의견을 국민들에게 묻는 안건이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실 것 같군요...
"호주는 공화국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영연방에 속한 입헌 군주제를 따르는 국가입니다.
"호주는 여왕이 국가 원수입니까?"
그렇습니다.
아~~~주 멀리 떨어진 영국 버킹검궁에 있는 엘리자베스 2세가 헌법적으로 국가 원수입니다.
한국에 있을때 많은 분들에게 위의
이야기를 해 드리면 상당수가 놀라셨습니다. 하긴, 한국인들 대부분은 호주 시드니가 여기 수도로 알고 있기도 하지요... (호주의 수도는
시드니에서 차로 약 3시간 떨어진 캔버라 - Canberra - 입니다)
호주는 영연방이지만 뭐랄까... 속국이거나 조공을 갖다
바치는 식민지는 아닙니다. ^^ 여왕은 그냥 상징적인 존재일뿐 호주내의 국정에 간접은 없습니다.
호주 대륙은 16세기 경
백인으로써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처음으로 발견되었습니다. 호주 내에는 약 5만년동안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원주민들(Aborigines)이
이미 있었지만, 백인들의 발길은 네덜란드 뱃 사람들이 처음이였습니다. 그러다 현재 시드니가 있는 호주의 동부 해안은 영국인 James Cook
선장이 발견하였고, 1788년 1월 26일, 영국에서 죄수들을 태운 배가 도착하여 죄수 식민지(penal colony)로써 첫 출발을
하였습니다.
1901년 1월 1일, 호주의 여섯 주가 합쳐져서 하나의 자치 국가로 형성 되었습니다. 이것을 Federation of
States라 부르고, 초기 수상은 Edmund Barton이라는 사람이 했지요. 따라서 호주는 아주 젊은 국가입니다. 미국보다도 더 젊다고 할
수 있죠...
현 제도는 이렇습니다 - 정치 제도는 영국의 입헌 군주제를 표방한 Westminister 시스템입니다. 하원, 상원이
있고, 하원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 당수가 수상이 됩니다. 따라서 수상이야말로 국민이 뽑은 실질적인 정치적 권력을 손에 쥔
사람입니다.
수상은 자리에 오른 후 내각을 만들고, 총독(Governor-General)을 손수 뽑습니다. 총독은 이론적으로는
여왕의 대변인입니다. 여왕이 직접 호주내에서 지배(?)를 못하니 그녀의 대표자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총독은 말씀드렸듯이 수상이 뽑습니다.
UN에서 호주를 대표해 연설하는 것도 총독입니다. 수상이 뽑은 내각은 총독이 위임장을 내리고, 장관이나 수상 자신이 사임을 하면 총독 앞에서
사표를 제출합니다. 총독 역시 상징적인 존재로써 정치적인 힘은 거의 없습니다. 호주 헌법상으로는 여왕, 총독, 수상 순으로 권력이 내려 오지만
실제 권한은 수상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1901년 이후로 계속 내려 오고 있습니다. 많은 인류 학자들들은 호주의 민주주의가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된 것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고, 본인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의 어지러운 정치판과 비교할 때 판이하게
다릅니다.
한국이 4년마다 아시안 게임에 나가듯이 호주도 4년마다 영연방 게임에 나갑니다. 중국이 아시안 게임 강호라면 호주는
영연방 게임의 강호입니다. 금메달을 거의 싹슬이 하는 수준이죠...
호주내의 공화국 운동이 활발하게 된 것은 90년초에 수상으로
있었던 노동당(Labour Party) 당수 Paul Keating 때였습니다. 그는 제가 보기에 정말 비젼이 있는 정치가였습니다. 현 수상인
자유당(Liberal Party)의 John Howard와는 비교가 안되는 인물이죠. (물론 이것은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Keating : 친아시아적, 개방적, 개화적인 인물
Howard : 예전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인이
지금도 따라 붙는 자, 보수적인 군국제주의자...
클린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면 청와대의 귀빈 만찬석에서 식사 전 와인 잔을 높이
쳐들고 아마 이렇게 건배를 하겠죠 - "김 대통령 내외분의 건강과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
하지만 호주에 오면 이렇게 합니다 -
"호주의 지도자인 여왕의 건강과 그녀의 나라를 위해서!" 수상이 바로 옆에 서있지만, 여왕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으면서도...
Keating 전 수상은 호주의 Federation이 100년이 되는 해인 2001년에 호주인이 뽑은 호주인
대통령이 국가 원수인 공화국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욕심을 부리자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여왕이 아닌 호주인 대통령이
개회사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음 선거에서 Howard에게 졌고, 정치계에서 깨끗이 물러났습니다. 호주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적인
정치가가 그렇게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고 물러나는 것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Howard가 수상이 된후 공화국 운동은 많이
주춤했죠. 하지만 공화국제에 대한 국민들의 느는 성원을 무시할 수 없어서 이례적인 전당 대회가 열렸고, 결과로 호주는 언젠가 공화국이 되어야
한다는 결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수상 자신은 반대했지만, 결과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렇게 해서 1999년 11월 6일, 어제의 국민
투표까지 오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전당 대회에서도 나타난 공화국 주의자들의 분열이 결국은 이 국민 투표를 망쳤습니다. 좀 전,
80%의 개표율이 지났는데 공화국제 찬성자는 45%, 반대자는 55%로 나타나 사실상 군국제자들의 승리로 마감이 났습니다.
공화국
주의자들의 분열은 바로 어떤 공화국 모델을 택하냐에서 일어났습니다. 미국처럼 직접 국민이 뽑느냐, 아니면 국민이 후보로 내세운 사람을 국회의
2/3 이상이 찬성해서 선출된 사람이 되느냐에서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솔직히 후자의 모델은 그렇게 인기 있는 모델이 아니였습니다. Howard
수상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또한 현제도인 군국제를 유지하고 싶었기에 이번 국민 투표안의 안건은 - "여왕을 버리고 호주 국민이 후보로
내세운 사람을 국회의 2/3 이상이 결의해서 뽑은 대통령을 원수로 하는 공화국제에 찬성하느냐?"로 정했습니다.
많은 공화국주의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니면 공화국 자체에 대한 국민 투표를 현 수상에게서 바라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죠.
아~~~ 정말 원통합니다!!! 어떻게 얻은 절호의 기회인데... 전 열렬한 공화국주의자입니다. 이제 호주도 성숙할
만큼 성숙한 나라입니다. 도데체 나랑 여왕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전 이 나라를 이제 제가 살
땅으로 받아 들였고, 사랑합니다. 호주를 위해서도 공화국이 최선의 길인줄 믿습니다. 나중에 논의되어도 될 공화국의 방법상의 문제로 아예 공화국
자체를 반대하다니... 언제 또 어제와 같은 국민 투표가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투표로 호주돈 1억 2천만 달러의 돈이 (한국돈
962억원) 소요 되었는데... 정말 허탈합니다...
한국의 정치, 사회 문제에도 가슴 아퍼하는 저이지만, 이번 일은 제 가슴
깊숙히 믿고 있는 부분들이 상처 받았기에 정말 말문이 막히는군요...
이제 새벽 2시가 넘었는데도 술이 생각나는 시간입니다...
어제 하루만은 그래도 어쩌면 먼 훗날에 내가 아니라도 내 자녀가 이 땅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꿈이라도 꿨는데... 그 꿈을 다시 접어 둬야
겠습니다... 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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