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에서 산지도 총 합해 보면 거의 15년이 되어갑니다. 내 나이가 만 24세이니까 내 짧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여기에서 보낸 것이다. 호주인들이 즐겨먹는 음식, 그들이 좋아하는 럭비, 크리켓 같은 운동들, 여기 사람들의 많은 관심사인 환경 문제 등등... 난 이 모든 것들에 관심 있고 좋아하며, 한동안 접하지 못하면 이것들을 원하는 현상까지 보인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1.5 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에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 정체성 문제로 왜 그리 방황하니? 너희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다 - 두 언어를 자유스롭게 구사하고, 두개의 아주 다른 문화속에서 다 잘 살 수 있으니 너희들은 아주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수없이 들은 이야기죠.
나도 나의 장점들에 감사하며 나 또한 이것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질 수 없는, 어떻게 보면 특별한 재능(?)인 것을 인정합니다.
나를 포함한 여기에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은 Korean-Australian으로서 자긍심을 많이 느낍니다. 하지만, 우린 완전한 Korean 아니면 완전한 Australian이 될 수 없기에 여기서 (사람의 정도마다 차이는 있지만) 갈등이 생깁니다.
실제로 작년 1년동안 모국에서 일하기 전까지 난 호주인보다는 그래도 한국인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일년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난 이 생각을 버렸죠.
그렇다고 내가 한국에서 무슨 아주 나쁜 일을 경험했다거나, 어두운 모습들만 보고 듣거나,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실제로 난 아주 유익하고 좋은 시간들을 보냈고, 한국에서 보낸 시간들은 매우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게 평생 기억될 것입니다. 그럼, 뭔가 문제인지???
글쎄...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난 한국에서 "이방인"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컬합니다. 호주에 사는 동안은 내가 그 땅의 이방인이라고 평소 생각해 왔는데, 막상 호주를 떠나고 같은 언어만 사용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들만 모여 있는 나의 모국에서, 난 호주에서 있었을 때보다 더 강한 그 이방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나 말들이 있었고, 그때서야 진정으로 나의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시드니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들은 차차 하나씩 이야기 할까 합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Newsweek에 소개된 교민 2세의 짧은 글은 무척 인상이 깊었습니다. 제목은 "The Good Daughter" (착한 딸)이였는데, 그것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들에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 글을 쓴 사람은 Susan Hwang이라는, 미국에서 태어난 여성입니다. 그녀는 평생 자기의 성이 "황"이 아니라 미국식으로 발음하는 "횅"인줄 알았죠. 어느날, 교민 세탁소에 갔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민이 운영하는 세탁소인 것을 가계 안에 들어가서 알아차린 그녀는 같은 한국인으로써의 예절로 작은 목례를 했습니다. 그러나 가계 주인은 못 본듯 영어로 물었습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Susan 또한 영어로 자신의 이름을 "수샌 횅"이라고 했죠. 그러자 가계 주인이 "횅? 중국 사람이에요?"하고 되묻습니다...
Are you Chinese? 여기에 살면서 그 질문을 참 많이 받습니다. (실제로 약간~~~ 중국틱한 면이 제 모습에서 나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Susan을 당황하게 한 것은 그녀 또한 그 질문들을 수없이 받았지만 단 한번도 같은 한국인이 그 질문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변명이라도 하듯 "한국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 문장을 영어, 독어, 불어, 심지어 라틴어로까지 말할 수 있어도 모국어로 쉽게 못한다는 사실... 결국 영어로 "I'm Korean"이라고 답했더니 가계 주인이 더 놀라면서 하는 말 - "한국 사람이요? 성이 횅이라고... 아~~~ 황을 잘못 말했군요!"하면서 웃는다.
나이 30 이 가까워 질 때 처음으로 지적받은 그녀의 성 "황"... 그녀는 무척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왜 미리 말 안해 주었냐고 거의 따지듯이 묻자 어머니께서 답하시길 - "그게 무슨 상관이냐? 넌 미국인이야..."
Susan이 사춘기를 거치면서 대학교에 들어가는 과정은 어느 미국 청년과 다를 게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미국으로 이민 온 게 아주 많은 것들을 한국에 버리고 큰 모험을 하신 것이었기에 자식들은 미국인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모두 누리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녀들이 전적으로 미국 사회에 동화된 미국인이 되길 원하셨다.
대학 졸업 후 Susan은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대학원에 진학해서 법이나 의학을 공부하길 원하셨다. 결국 그녀는 타협을 했다 - 대학원에 가되 영문학을 하겠다고...
그녀는 일평생 살아오면서 "타협"을 했다.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당하셨는지 그녀 자신이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만 결코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큰 희생을 치루시고 인생 최대의 모험으로 낯선 외국땅에 와서 그녀를 길렀는데, 어찌 그녀가 그것을 모른 척 할 수 있을 것인가? Susan은 또한 하나의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 만약 내 인생이 실패로 끝나면, 성공하지 못한다면, 나의 부모님의 희생과 모험 또한 실패요, 부질없는 것이지 않는가? 그녀는 꼭 성공해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느낀다.
그녀의 대학원 공부는 결국 실패작이 되었다. 자신의 꿈을 접어둔 채 걸은 길이였기에, 그녀를 자극하는 공부가 될 수 없었다. 부모님을 엄청나게 실망 시켰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위의 "세탁소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완전한 미국 사람으로 동화되길 원하셨지만, 막상 딸의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대하지 못하셨다 - 무조건 한국 사람과 결혼하여 당신들을 닮은 손자를 보기 원하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녀의 이성 관계를 그녀는 이렇게 표현했다 - "난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해본적이 없으며,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도 결혼 문제가 생각되어 만나는 것 조차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Susan이 마치 말 안장에 걸쳐 앉은 것처럼 두 문화 사이에 낀 모습을 보지 못하신다. Susan은 자신이 알고 있는 단 하나의 나라(미국)와 그 국민들에게 동질감을 느끼지만 그 나라와 국민들은 그녀에게 같은 동질감을 느끼질 못한다...
그녀의 짧은 글이었지만, 난 왠지 가슴이 찡-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한국에 같이 온 교포들에게 보여주면 그들도 나와 같이 이 기사의 많은 것들을 동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번 한국인이면 평생 한국인..." 이런 생각은 이제 솔직히 버려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부담입니다. 저와 같이 그냥 Korean-Australian으로써, 세계에 퍼져 있는 Korean-American, Korean-Canadian, Korean-German 등등... "Korean" 뒤에 붙는 국적 또한 인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 또한 Susan 같이 부모님께 향한 그 "의무감"이 상당히 큽니다. 부모님께서 한국에 얼마나 좋은 것들을 버리시고 오셨는지 잘 알기에, 제 앞에서 "널 위해 이 곳에 왔다" 반 농담조로 말씀하실 때, 초기에 여기서 얼마나 힘들게 정착하셨는지 잘 알기에 전 차마 여기서 그저 그런 인생을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호주에서도 완전한 동질감을 찾을 수 없고, 모국인 한국에 가서도 완전한 동질감을 찾을 수 없고, 한 사회의 - 한국이든 호주이든 - 진정한 소속원이 되는 기분이 무엇인지 전 잘 모릅니다.
Korean-Australian... 듣기 좋은 말이고, 제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 찾아가는 정체성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슨 동정이라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교민 1.5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적인 사고 방식으로만, 혹은 호주인의 눈으로써만 볼 때, 저희들은 저희들이 유일하게 연관시킬 수 있는 두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찍힙니다. 무슨 특별 대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에 계신 분들은 교민 1.5 세대들이 바로 옆에 사는 청년처럼, 한국에서 쭉 자란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면, 넓은 아량으로 포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조국의 품이 따뜻하다는 것을 1.5 세대를 넘어서서 한국말조차 잘 못하는 2세, 3세들까지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군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1.5 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에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 정체성 문제로 왜 그리 방황하니? 너희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다 - 두 언어를 자유스롭게 구사하고, 두개의 아주 다른 문화속에서 다 잘 살 수 있으니 너희들은 아주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수없이 들은 이야기죠.
나도 나의 장점들에 감사하며 나 또한 이것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질 수 없는, 어떻게 보면 특별한 재능(?)인 것을 인정합니다.
나를 포함한 여기에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은 Korean-Australian으로서 자긍심을 많이 느낍니다. 하지만, 우린 완전한 Korean 아니면 완전한 Australian이 될 수 없기에 여기서 (사람의 정도마다 차이는 있지만) 갈등이 생깁니다.
실제로 작년 1년동안 모국에서 일하기 전까지 난 호주인보다는 그래도 한국인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일년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난 이 생각을 버렸죠.
그렇다고 내가 한국에서 무슨 아주 나쁜 일을 경험했다거나, 어두운 모습들만 보고 듣거나,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실제로 난 아주 유익하고 좋은 시간들을 보냈고, 한국에서 보낸 시간들은 매우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게 평생 기억될 것입니다. 그럼, 뭔가 문제인지???
글쎄...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난 한국에서 "이방인"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컬합니다. 호주에 사는 동안은 내가 그 땅의 이방인이라고 평소 생각해 왔는데, 막상 호주를 떠나고 같은 언어만 사용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들만 모여 있는 나의 모국에서, 난 호주에서 있었을 때보다 더 강한 그 이방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나 말들이 있었고, 그때서야 진정으로 나의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시드니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들은 차차 하나씩 이야기 할까 합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Newsweek에 소개된 교민 2세의 짧은 글은 무척 인상이 깊었습니다. 제목은 "The Good Daughter" (착한 딸)이였는데, 그것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들에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 글을 쓴 사람은 Susan Hwang이라는, 미국에서 태어난 여성입니다. 그녀는 평생 자기의 성이 "황"이 아니라 미국식으로 발음하는 "횅"인줄 알았죠. 어느날, 교민 세탁소에 갔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민이 운영하는 세탁소인 것을 가계 안에 들어가서 알아차린 그녀는 같은 한국인으로써의 예절로 작은 목례를 했습니다. 그러나 가계 주인은 못 본듯 영어로 물었습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Susan 또한 영어로 자신의 이름을 "수샌 횅"이라고 했죠. 그러자 가계 주인이 "횅? 중국 사람이에요?"하고 되묻습니다...
Are you Chinese? 여기에 살면서 그 질문을 참 많이 받습니다. (실제로 약간~~~ 중국틱한 면이 제 모습에서 나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Susan을 당황하게 한 것은 그녀 또한 그 질문들을 수없이 받았지만 단 한번도 같은 한국인이 그 질문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변명이라도 하듯 "한국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 문장을 영어, 독어, 불어, 심지어 라틴어로까지 말할 수 있어도 모국어로 쉽게 못한다는 사실... 결국 영어로 "I'm Korean"이라고 답했더니 가계 주인이 더 놀라면서 하는 말 - "한국 사람이요? 성이 횅이라고... 아~~~ 황을 잘못 말했군요!"하면서 웃는다.
나이 30 이 가까워 질 때 처음으로 지적받은 그녀의 성 "황"... 그녀는 무척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왜 미리 말 안해 주었냐고 거의 따지듯이 묻자 어머니께서 답하시길 - "그게 무슨 상관이냐? 넌 미국인이야..."
Susan이 사춘기를 거치면서 대학교에 들어가는 과정은 어느 미국 청년과 다를 게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미국으로 이민 온 게 아주 많은 것들을 한국에 버리고 큰 모험을 하신 것이었기에 자식들은 미국인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모두 누리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녀들이 전적으로 미국 사회에 동화된 미국인이 되길 원하셨다.
대학 졸업 후 Susan은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대학원에 진학해서 법이나 의학을 공부하길 원하셨다. 결국 그녀는 타협을 했다 - 대학원에 가되 영문학을 하겠다고...
그녀는 일평생 살아오면서 "타협"을 했다.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당하셨는지 그녀 자신이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만 결코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큰 희생을 치루시고 인생 최대의 모험으로 낯선 외국땅에 와서 그녀를 길렀는데, 어찌 그녀가 그것을 모른 척 할 수 있을 것인가? Susan은 또한 하나의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 만약 내 인생이 실패로 끝나면, 성공하지 못한다면, 나의 부모님의 희생과 모험 또한 실패요, 부질없는 것이지 않는가? 그녀는 꼭 성공해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느낀다.
그녀의 대학원 공부는 결국 실패작이 되었다. 자신의 꿈을 접어둔 채 걸은 길이였기에, 그녀를 자극하는 공부가 될 수 없었다. 부모님을 엄청나게 실망 시켰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위의 "세탁소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완전한 미국 사람으로 동화되길 원하셨지만, 막상 딸의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대하지 못하셨다 - 무조건 한국 사람과 결혼하여 당신들을 닮은 손자를 보기 원하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녀의 이성 관계를 그녀는 이렇게 표현했다 - "난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해본적이 없으며,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도 결혼 문제가 생각되어 만나는 것 조차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Susan이 마치 말 안장에 걸쳐 앉은 것처럼 두 문화 사이에 낀 모습을 보지 못하신다. Susan은 자신이 알고 있는 단 하나의 나라(미국)와 그 국민들에게 동질감을 느끼지만 그 나라와 국민들은 그녀에게 같은 동질감을 느끼질 못한다...
그녀의 짧은 글이었지만, 난 왠지 가슴이 찡-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한국에 같이 온 교포들에게 보여주면 그들도 나와 같이 이 기사의 많은 것들을 동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번 한국인이면 평생 한국인..." 이런 생각은 이제 솔직히 버려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부담입니다. 저와 같이 그냥 Korean-Australian으로써, 세계에 퍼져 있는 Korean-American, Korean-Canadian, Korean-German 등등... "Korean" 뒤에 붙는 국적 또한 인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 또한 Susan 같이 부모님께 향한 그 "의무감"이 상당히 큽니다. 부모님께서 한국에 얼마나 좋은 것들을 버리시고 오셨는지 잘 알기에, 제 앞에서 "널 위해 이 곳에 왔다" 반 농담조로 말씀하실 때, 초기에 여기서 얼마나 힘들게 정착하셨는지 잘 알기에 전 차마 여기서 그저 그런 인생을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호주에서도 완전한 동질감을 찾을 수 없고, 모국인 한국에 가서도 완전한 동질감을 찾을 수 없고, 한 사회의 - 한국이든 호주이든 - 진정한 소속원이 되는 기분이 무엇인지 전 잘 모릅니다.
Korean-Australian... 듣기 좋은 말이고, 제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 찾아가는 정체성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슨 동정이라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교민 1.5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적인 사고 방식으로만, 혹은 호주인의 눈으로써만 볼 때, 저희들은 저희들이 유일하게 연관시킬 수 있는 두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찍힙니다. 무슨 특별 대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에 계신 분들은 교민 1.5 세대들이 바로 옆에 사는 청년처럼, 한국에서 쭉 자란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면, 넓은 아량으로 포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조국의 품이 따뜻하다는 것을 1.5 세대를 넘어서서 한국말조차 잘 못하는 2세, 3세들까지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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