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자랑하는 주책 맞은 아빠처럼 보이겠지만, 우리 첫째 아들 서진이는 호주에서 태어난 아이치고는 한국말을 참 잘하는 것 같다.
서진이가 아기였을 때, 그 당시 살았던 아파트 앞의 공원에 산책 나갈 때마다 "우리 나무 보러 가자~"하고 밖에 나가서는 나무들을 가리키며 "서진아 이게 나무야~ 나무~"라며 말했더니, 결국 서진이가 처음 제대로 발음하게 된 한국말은 "엄마", "아빠"도 아닌 바로 "나무"가 되었다.
서진이가 말하게 된 첫 영어 단어는 17개월 당시 제일 좋아했던 "apple" - 별로 기대 안하고 사과를 보여 주면서 "apple"이라고 말하니까 바로 따라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얼른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했던 기억이 불과 얼마전 일 같다.
<서진이의 첫 영어 단어 "apple" - 2006년 5월 16일 (17개월)>
서진이가 하는 말들 중에 참 재미있고, 어린 아이들만의 머릿속에서만 나올 수 있는 기발한(?) 말들이 많기에, 난 그럴 때마다 틈틈히 워드 파일로 그것을 저장하곤 했다.
파일 이름을 "서진 어록"이라고 했는데, 그 중 몇가지만 나눠볼까 한다.
<2009년 초>
엄마~~수박껍질 해요 (숨박꼭질 해요)
서진: (탱크를 보여주며) 아빠- 탱크는 나쁜거에요-
아빠: 왜?
서진: 탱크는 총이 있어서요.
(잠시후) 아빠- 물총 사주세요.
아빠: 물총? 서진이가 아까 총은 나쁜거라고 그랬잖아?
서진: 근데요- 물총은 물이 나와서 사람이 안 죽어요.
2009년 3월 2일
할머니: 서진아- 서진이는 왜 이렇게 예뻐?
서진: 서진이가 멋져서 그래요~
2009년 3월 8일
이때 일어난 일이 제일 압권이었고, 지금도 우리 부부는 간혹 이 이야기를 하곤 한다.
아내와 내가 차 안에서 경제적인 것,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대화를 마무리 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휴... 돈을 쫓아가면 돈이 안 모아진다고 하던데, 어떻게 하면 돈을 모으지?”
그러자 그때까지 뒤에서 잠잠히 듣고 있던 서진이 왈:
“엄마 – 욕심은 욕심을 불러요.”
순간 아내와 나는 깜짝 놀라 서로를 잠시 바라보곤, 아내는 뒤를 돌아보고 나는 백미러로 뒤를 확인했다 - 당연히 뒷좌석에는 서진이만 있었지만, 방금 들은 말이 만4세의 아이가 할만한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진이는 그저 씨익- 웃고 있기만 했고, 우리 부부는 어이가 없어서 그냥 크게 웃기만 했다.
"그래... 서진이 말이 맞다. 욕심을 부리면 안되지?"
서진이는 아마 어디선가 주워 들은 이야기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가, 아주 절묘한 상황에 맞추어 그 말을 한 것 같다.
그러한 말을 기억하는 것은 둘째치고, 어떻게 그러한 상황에 맞추어 그러한 말을 할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신기하다.
그런데 서진아... 어떡하지?
아빠는 오늘도 1등 상품이 천오백만불 걸린 복권을 샀단다... 물론 꽝이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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