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의 일인 것 같다.
호주에 사는 한인 문인들이 수필집을 출판하였는데, 그 제목이 “심심한
천국,
재미 있는 지옥”이었다.
여기서 “천국”은 호주를, “지옥”은 한국을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호주를
심심한 곳으로, 한국은 재미 있는 곳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어느 신문에서 세계 각 도시의 생활 수준을 여러 각도로 측정한
결과 시드니가
4위에 뽑혔다고 전했다.
그만큼 시드니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요, 자연의 축복을 마음껏
받은
호주라는 선진국으로써 갖추어야 할 왠만한 좋은 환경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70년대 월남전 이후 호주로 많이 들어온 초기 한인 이민자들은
이 곳을 서슴없이
“지상 천국”이라고 까지 불렀다.
한국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를 경쟁이 무척이나 치열한 사회라고
한다.
정치판은 물론이고, 직장인들에게는 사회 생활 자체도 치열한 생존 싸움이다.
그러한 면모가 학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가르치는
입장이나 가르침을 받는 입장
모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산다.
만약 한국에서 길 가는 아무 고3 학생에게 물어 본다면 십중팔구 그들은
자신의
삶이 너무 각박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이 커다란 압박 강념에 사로 잡혀 있다는
대답을 들을 것이다.
나 역시 한국에서 살
때 그냥 인파 속에서 군중에 밀려 목적지 없는 길을 걸을 때
조차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한국은 참 바쁘고 빨리
돌아가는
사회 같다.
한국에 사는 그 많은 사람들이 부러움과 선망의 눈길을 호주에 사는
이민자들에게 보낼 때, 정작 그
당사자들 중 많은 이들은 이 곳을 “심심한
천국”이라고 표현한다.
바쁘고 각박하다고 느껴지는 한국 사회를 벗어나 타국으로의 이민이라는
커다란
결정을 내렸는데, 막상 풍족하게 보이고 여유스러운 이곳의 생활에 익숙하지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한국을
떠나게 만들었던 사회적 요인들을 호주에서 그리워하게 되는
현상이 생긴다.
참 아이러니컬 한 일이요, 약간 허무한 고백이 아닌가
싶다.
원하던 것을 타국에서 찾았는데, 막상 그것들을 경험해 보니 나중에 무미 건조 해
져서 그것들이 심심하고 따분하게
느껴진다.
버리고 싶어서 쌓아 놓은 삶의 기반조차 떠났는데, 나중에는 그 버려진 것들이
오히려 삶의 활력소 처럼 보이고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치열하다 보니 그것이 서비스 업종에도 영향을 끼쳐
그러한 면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오히려 너무 과다한 친절로써 고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향도 있다.
영문 표현에”Killing with
kindness”라는 문구가 있는데, 직역을 하자면 “친절로써
사람을 죽인다”이다.
내가 이러한 표현을 실제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은
선진국 호주가 아닌
98년~99년에서의IMF 한국이었다.
운이 좋은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접해 본 한국의 고객 콜 센타의
직원에서부터
백화점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는 비록 위장 되어 보이고, 잘 훈련 되어 복제
인간처럼 서로 비슷한 음성으로 말하는
거였지만, 서비스를 받는 당사자를
특별하다 못해 일말의 부담감 조차 느끼게 해 주었다.
호주에서는 모든 것이 여유롭고
느긋하다고들 말하는데, 이것이 서비스 문화에는
오히려 안 좋은 조건들이다.
한 단적인 예로 오늘 나는 전화국에 전화하여 전화 상태가
몇 주간 안 좋다고
하였는데, 일주일 후에나 기술자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자가 방문하는 시간도 막연하게 그냥 “12시에서 4시
사이”라고만 일러
주었다.
한국이라면 아마 몰라도, 당일이나 내일 찾아올 것이고, 방문 시간도 좀 정확하게
일러 줄
것이다.
또 다른 예로써 호주의 한 인터넷 사이트의 홍보 이벤트에 참여하였는데, 해당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노래
6곡을 CD로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6곡을 선곡한 후 그 CD가 집으로 배달되기까지는 약 4주가 걸렸다.
한국에서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 하였다가는 당장 망할 것 같다.
“심심한 천국, 재미 있는 지옥”
과연 어느 나라를 칭찬한 것인지, 욕한
것인지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 표현이다.
솔직히 나는 어느 한 쪽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는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어렸을 적부터 “하면 된다”라고 가르침 받았다.
물론 그러한 말을 되새기며 한국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참 긍정적이 표현 같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라”
마치 끈기와 결의에 찬
불굴의 한국인의 의지를 표현하는 말 같지만,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그러한 생각과 말에는 어두운 면들도 있다.
세상에는 안되게
놔 둬야 하는 것도 있는데, 그것을 되게 할려고 억지를 쓰게
만들고, 부조리와 불법적인 일들도 행해지게 된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다른 이에게 이번 만큼 한 눈 감아주라고 부탁도 한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익숙해진 한국의 기성 세대들이 호주에 오시면 이
곳
사람들이 때로는 융통성 없는 꽉 막힌 사람들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진국이라서 환경도 좋고, 호주 생활이
여유롭고, 이 곳 사람들이 느긋하다는
말들을 한국의 각박하고 치열함 속에서 지쳐 있을 때 들으면, 당연히 이 곳을
동경과 선망의
나라로 볼 것이다.
그 중 몇몇 이들은 그러한 말들을 들으며 더 이상 호주를 그냥 부러움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직접
찾아 가서 그러한 것들을 누리고자
이민이라는 큰 결심을 하신다.
그런데, 막상 여기에 와서 이민 결심을 하게 된 당시에는 그토록 보고
싶고
누리고 싶었던 것들을 해 보니, 이게 생각만큼 좋지 않다는 것이다.
무슨 감언이설(?)에 속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생각 보다 문화 충격도 훨씬 크고, 여유스러움과 느긋함이 아닌, 그냥
답답함이 자주 느껴지고 또 이곳 사회가
그렇게 보여지기까지 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예전에는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던 사람들과의 부딪힘,
경쟁, 치열함 – 이러한
것들이 바로 자신의 생(生)의 박동감이자, 살아있음을
일깨워주는 촉매와 같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비록 사는 것은 한국에서가 더
힘들지라도, 여러모로 재미가 있어 보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너무 단순하게 보편화(generalization)
하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호주와 캐나다 등지로 이민이 늘어난다는 기사를
접하고 과연 그러한 분들이 나같은
1.5세대가 여기서 보고 느낀 점들을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감히 두서 없는 글을 적어 보았다.
한국에서 버리고 싶은
것들이 정말 나중에 후회 없는 것인지,
또 새로운 타국에서 얻을 수 있다고 들은 것이 정말 얻어야 하는 것인지
심각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셔야 할 것 같다.
Hindsight(일이 저질러진 다음에 생기는 지혜)는 참 좋은 것이지만, 기왕이면
일을 벌리기 전에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지구 어느 곳에 살더라도 행복을 추구하고 – 하지만 행복만을 추구하지 않는 –
자신과 주위에
눈길 돌릴 줄 알고, 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망설임 없이 살아가는
모습으로 산다면, 바로 그 곳이 재미 있는 천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