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내뱉은 한 문장으로 인해 시드니는 온통 흥분의
열기로 뒤덮인 적이
있습니다.
"...and the winner is... SYDNEY!"
"...승자는 시드니 입니다!"
7년 전에
2000년 올림픽 개최를 두고 영국의 맨체스터, 중국의 베이징, 그리고
호주의 시드니가 막판까지 피 말리는 경합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중국의 베이징은 강력한 우승 후보였지요.
7년 전의 중국이라면 천안문 사태로 얻은 국제적 비난의 화살을 어느 정도
벗은
후였고, 바야흐로 자유 진영에 점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중국의 문을 세계의
자본주의에 열어 놓던 시기였습니다.
만약에
베이징과 시드니, 둘 만의 대결이었다면 베이징이 2000년 올림픽을 개최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막판 대결에서 떨어진
영국의 맨체스터가 적극적으로 호주를 밀어 주어
어떻게 보면 시드니는 지원군(?)의 격려로 베이징을 제치고 사마란치 위원장의
입에서
위와 같은 말을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올림픽 개최 도시 발표를 앞두고 시내에서는 수많은 인파가 대형 스크린에
모여
사마란치 위원장의 결과 발표를 숨 죽이고 기다렸습니다.
그 고요한 적막을 뚫고 울려 퍼진 사마란치 위원장의 억양 센 영어
발음:
"...and the winner is... SYDNEY!"
그 후로 모든 이들은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 때의 감동을 전 아직도 기억합니다.
시드니는 그 때의 감동과 환희와 올림픽 열기가 7년 동안 이어져서
결국은
2000년 9월 15일, 대망의 개막식 때 결실을 보게 됩니다.
저는 그 당시, 그리고 9개월 전만 해도 현재 올림픽이
진행되고 있는 Homebush라는
동네에서 살고 있었기에 아마 올림픽으로 인해 그 곳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개막식이 거행된 Stadium Australia라는 올림픽 주 경기장은 예전 저희 집에서 차로
7분 거리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곳입니다.
별 쓸모 없는 땅에 공사가 진행되더니, 제일 처음으로 올림픽 수영장이 열리고,
그 외의 여러
시설들이 생기고, 새로운 도로가 닦여지고 동네가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일년 동안 원어민 영어 교사로 있다가 99년 8월 말에
시드니로 돌아 왔을
때는, 불과 1년의 공백이었지만 올림픽촌에서 길을 잃을 정도가 될 정도로 놀랄
만큼 많이
변하였습니다.
전 솔직히 올림픽이 열리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잘 실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올림픽 게임 표를
구입하고 싶은 마음도 잘 들지 않고, 하다 못해
자원 봉사라도 하고 싶다라는 생각도 들지 않아 지구촌의 큰 축제라는 올림픽에
너무
무감각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개막식이 열리기 이틀 전인 9월 13일 수요일 오후였습니다.
오랜만에 정시에
퇴근을 하고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을 때, 차가 많이 막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사거리의 신호등에 멈추었는데, 앞을 보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 있어서 길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제 차는 신호등에서 약 5번째 떨어진 차였는데, 앞차의 사람들은 아예
차 시동을 끄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내려서 저처럼 내리고 있는 앞차의 남자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Is the torch going past this area?"
"올림픽 성화가 이 곳을 지나가나 보죠?"
그
남자는 트렁크에서 카메라를 빼며 맞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남자는 덧붙이면서 얼마 전 자신의 동네에 성화가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오늘 또 보게 되어서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제 뒤를 보니 수많은 차들이 일렬로 서 있었고, 거의 모든 이들이 차 밖으로
나와
앞의 일을 관심 있게 보는 표정이었습니다.
차가 막힌다고 해서 그 누구 하나 짜증내는 표정을 짓는 이가 없었습니다.
모두
차 시동을 끄고 차 밖으로 나와서, 어떤 이들은 차 위에 올라서서, 앞의 광경을
여유롭게 미소 지으면서 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교통 체증(traffic jam)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도 차에서 내려 앞의 군중들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마침 그 사거리는 성화 주자의 교환식이 이루어질 양, 한 중년 여인이 성화 주자 유니폼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몇 분 지나자 경찰 호위대가 지나가고, 앞의 군중들부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하더니,
한 중년 남자가 성화를 흔들면서
가볍게 뛰어 오고 있었습니다.
저도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정말 기쁜 마음으로 박수 치며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 중년 남자는 기다리고
있던 중년 여인에게 가더니 가볍게 포옹을 하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성화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성화의 불을 부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년 여인은 그리스에서부터 온 그 성화의 불길을 받아서 다음 이에게 전해
주기 위해 앞으로 향했습니다.
성화 자체를 본
시간은 아마 30초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무척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올림픽이 정말 시작하는구나 하고 피부 깊숙이 느낀
체험이었으며,
무척 가슴이 벅차 오르고, 뿌듯하고, 따뜻해 져 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틀 후에 본 개막식...
정말 멋 있더군요.
호주의 여러 면모들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공연과 멋진 성화 점화식...
호주인으로서 무척 자랑스러운
기분이었습니다.
96번째로 입장하여 흰색 바탕에 푸른 한반도가 그려진 깃발을 두 남녀가 나란히 들고
나오는 장면에 스타디움 내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립 박수를 치며 뜨겁게 환영하는
모습... 남과 북의 구분 없이 그냥 "Korea"로 그 국가가 소개되어 질 때,
저는
한국인으로서 무척 뭉클한 가슴에 심장 고동 소리가 더 강해지고 빨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7년간의 기다림 끝에
올림픽이 찾아 왔습니다.
새 천년의 첫 대행사가 아름다운 도시 시드니에 열림으로써 저도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 곳의 아름다움을
세계 곳곳에 전파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아는 한국의 몇몇 분들은 혹시나 하고 텔레비전에 소개되는 시드니의 모습을
자세히 보았다
합니다.
혹시나 제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랬다는 순진한 그 분들 말씀에 괜히
웃음이 나오며 그냥 기분이 좋더군요.
^^
56년 멜버른(Melbourne) 올림픽 이후 다시 호주 땅에서 맞이하는 이 올림픽...
그 당시에 한국은 6.25의
상혼이 채 어물지도 않은 상태에 호주 땅을 밟았을 겁니다.
새 천년을 맞이하며 남북한이 같은 호주 땅을 밟아 한 깃발 아래 화합된
모습을
온 세계에 보인 모습은 그 당시와 매우 상이한 모습일 겁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 그것이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모습" 뿐이라
하더라도 - 저에게는 감동을 선사하였습니다.
1956년과 2000년… 44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호주에서
열린 두 올림픽에서
보인 한국의 모습은 여전히 분단되어 있다는 것이 이 기쁜 올림픽 축제에 하나의
아픔으로 다가
옵니다.
만약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 다시 한번 호주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면 다음과 같은
꿈을 꿔 봅니다.
그 동안 호주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 받아 경찰 호위대 속에서 성화 주자로
뛰는 영광이 저에게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성화를 다음
주자에게 넘겨줄 때 그 사람 역시 나와 같은 한국인 1.5 세대라면
얼마나 더 뿌듯할까?
우린 아마 뜨겁게 포옹을 나누고 성화 불을
건네 줄 겁니다.
그리고, 올림픽 개막식 때 Korea라는 이름으로 한 단일 국가가 등장한다면?
그 등장 장면이 이제는 익숙한 모습이
되어서 타국가 입장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시선을 받을 정도로 일상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면?
Korea가 입장할 때 TV 방송국의
사회자가 대화 거리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꺼내며 선수단이 입장하는 모습이 화면에 가득 채워지기를 바래 봅니다.
"네...
이번에 입장하는 국가는 Korea이네요. 알아주는 스포츠 강국이죠.
이번에 호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석하게 된 것이 어떻게 보면 뜻
깊겠죠?
오래 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그 당시의 남북한이 처음으로 공동 입장한
적이 있을 만큼 호주는 화합의 장소로 그들에게
기억될 겁니다. 물론 그 당시의
감동은 현재 선수단의 부모님들이나 기억할 테지만요..."
그냥... 위와 같은 꿈이라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시드니 올림픽은 다른 이유를 떠나서 남북한이 공동 입장했다는 사실 하나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싶네요.
7년 전의 그 외침이 오늘 새롭게 느껴집니다.
"...and the winner is...
SYDNEY!"
행복하세요-
## 사진 설명 (위에서 아래로> ##
1. 호주 전국을 누빈 성화 –
어디를 가든 모든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2. 개막식 때 남북한이 한 국기 아래 공동 입장하는 감동적인 모습입니다.
3.
선수단 입장 바로 전에 2000명의 밴드 단원들이 시드니 올림픽 심볼을
만들고 있습니다.
4. 인상 깊었던 수중 성화 점화식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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