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로 접어 들면서 시드니의 날씨가 활짝 피었다.
봄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때와 맞추어 따뜻한 햇살, 푸른 하늘,
점심 후의 식곤증, 상큼한 초록 내음 – 이 모두를 함께 동행하고 9월이 찾아왔다.
“앞 정원에 분홍 꽃들이
피었니?”
시드니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30분 떨어진 멜본(Melbourne)이라는 도시에 계시는 어머니가 여쭈어 보셨다.
“네?
그런 꽃들이 우리 집에 있나요?”
새삼스레 나의 무지함과 무관심을 느끼며 그렇게 대답하였다.
자신이 사는 집에 어떠한 나무와 꽃들이
있는지도 모르냐며 어머니가 장난스럽게 놀리셨다.
예전에도 부모님과 함께 살 때에도 계절에 바뀌어 새로운 꽃들이 피면 꼭 어머니가
옆에서 밖의 무슨 무슨 꽃나무를 살펴 보아라 하고 지시(?)를 하셨다.
그러면 마지못해 밖에 나가 – 간혹 끌려 나가기도 한다 – 그것들을
보고 무척 메마른(?) 감정으로 “네… 피었군요. 예쁘네요.”하고 사무적으로 대답하곤 하였다.
그러면 재미 없는 아들 두셨다 하시면서
어머니가 뒤에서 투정 부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멀리 계시지만 봄이 도착했을 때 시드니의 집에 어떠한 나무에서 어떠한 꽃들이
피는지 조차 아시는 어머니의 세심함에 잠시 놀랐다.
그와 함께 과연 난 얼만큼 바쁘게 살기에 앞에 무슨 꽃들이 피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쳤단
말인가 하고 자문해 보았다.
아무리 바쁘다 하여도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을 테고, 집 앞의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며 그들의 향기는
맡을 수 있을 텐데, 내가 왜 과연 그리할 수 없었는가 생각해 봤지만 특별한 이유를 모르겠다.
얼마 전에 어머니가 상기시킴으로
말미암아 나도 비로서 앞 정원의 꽃들을 보았다.
그냥 지나쳤던 그들을 관심 있게 보니 상큼한 봄의 기분에 흠뻑 빠지게 해 준다.
정말
봄이구나…
그 꽃들을 카메라에 담아 어머니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꽃들에게만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혹 주변의 사람들에게조차 그러는 것은 아닌지…?
며칠 전 직장 동료의 아버지가 돌아 가셔서 위로해 주기 위해 몇몇 회사
사람들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결혼식 참석 횟수도 늘지만, 그와 함께 장례식 참석 횟수도 느는 것 같다.
항상
그렇지만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면 많은 생각들에 잠긴다.
아버지를 여읜 Natalie라는 여자는 22살의
아줌마(?)이다.
20세에 결혼을 한 맏딸이다. 내 바로 옆 자리에 앉는데, 성격이 밝고 활발한 사람이다.
가끔가다 한국말도 가르쳐
주는데, 가르친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아줌마”였다.
그래서 가끔 “아줌마”라고 놀리기라도 하면 그 뜻을 파악한 그녀는 약간 뾰로통한
표정을 짓곤 하였다.
몇 달 전에 그녀의 부모님이 해외로 여행을 가자, Natalie는 자신이 부모님과 그렇게 많이 떨어져 본 적이
없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무척 귀엽게 보였다. 처음에는 위로하다가 나중에는 결혼한 아줌마가 뭐 그런 것 가지고
우냐고 놀리기도 하였다.
그 귀엽고 활발한 Natalie가 오랜 지병을 앓은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장례식장에서 확연하게 보여 너무나
안타까웠다.
장례식이 마친 후 포옹을 해 주며 “Be strong”이라고 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척이나 짧고 한정된 것이다.
지금까지 만난 인연들, 현재도 이어지는 인연들, 그 모두에게 충실히 하기만 해도
이 삶이 벅차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그들을 향한 진심을 밝히고 살아가기만 해도 하루를 다 소모할 듯
싶다.
새로운 생명이 소산 되어지는 이 봄에도 변함 없이 사라져 가는 생명이 있음을 겸허히 받아 들이고 싶다.
구름 한 점
없는 시드니의 푸르른 봄 하늘을 더 자주 쳐다보고 즐기고 싶다.
주변에 핀 이름 모르는 예쁜 꽃들도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그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싶다.
금년 봄의 여신이 나에게 그냥 스쳐 지나 보내는 아름다움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해주는 속삭임인 것
같다.
그러한 세미한 속삭임을 내 마음이 오래도록 들을 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행복한 9월달
보내세요-
<봄이 느껴지는 그림 같아서 아래에 넣었습니다. 시드니의 봄의 상큼함이 전달 되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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