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견 미미
<먼저 오늘 제 칼럼이 평소에 다루던 주제가 아님에 사과드립니다. (전에는 주제가 있었단 말인가???) 오늘 제
칼럼은 그냥 평범한 저의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도 간혹 이런 외도(?)를 하게 되어도 이해해 주실련지요...? ^^ 항상 찾아주시는 분들, 그리고
혹 오늘 처음 여기에 오신 분들 - 모두를 환영하며 감사드립니다.>
제가 어린 시절 한국과 호주 두 나라를 오갔던 이야기는
전에도 했을 겁니다. 유치원 가기 전에는 태국에서도 약 2년간 살았으니, 전 참 국제적으로(?) 파란만장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적어도
18세가(고3) 되기 전까지는 한 나라에서 삼년 반 이상 살아본 적이 없었죠. 그래서 한 집에서 오래 살아본 기억도 없습니다.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집이 그래도 제 짧은 생에서 제일 오래 살은 집이죠 - 91년부터 살았으니까 이제 9년이 되어갑니다. 이 집의 역사(?)와 함께
동반한 추억이 있다면, 바로 저희 집 개 "미미"입니다... 오늘은 1.5 세대 이야기가 아닌, 그냥 한 청년의 개 이야기나 할까
합니다...
이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살았던 집도 마침 한국 사람한테 팔게 되었습니다. 새로 이사하고 난지 얼마 안된 어느날,
한번은 저의 어머니와 동생이 혹 예전 주소로 우편물이 배달되었을까봐 예전의 집으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날 오후 늦게 돌아오셨는데, 전혀 뜻하지
않게 한 치와와(!)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황당하던지...
사연을 들은 즉, 그 치와와 "미미"는 저희 집을 산 주인
집 개였는데, 얼마전에 새끼를 한 3마리 정도 낳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집 아이들이 새끼만 귀여워해서 이제 어미는 찬 밥(?)신세로
전락해 버린거죠. 보통 개가 새끼를 낳으면 새끼를 나누어주는데, 그 집은 반대로 어미를 줄려고 한 모양입니다. 그때 마침 저희 어머니께서
오셨고, 집 주인은 저희 어머니께 미미를 키워 보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제 동생도 미미가 귀여워서 그렇게 하자고 했고, 어머니도
싫으시지는 않으셨는지, 나중에 "미미야~ 나랑 갈래?"하니까 선뜻 따라나섰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두고 두고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미미를 키운지 얼마 후에 알았지만, 미미는 낯가림이 매우 심해서 낯선 사람이 주위에 오면 엄청나게 짖고, 자기를 만지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낯선 사람이 만질려는 손동작만 보이면 물기 쉽상이였죠.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본 우리 어머니의 말을 그렇게 고분고분 따랐다는게,
지금도 저희 가족들간에는 이야기 거리입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자신이 그 집에서 곧 쫓겨날(?) 것이라는 운명을 자신도 알아차린
것일까요...?
제 동생은 무척 귀여워했는데, 전 솔직히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평소에도 개를 무척 좋아했고,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전 치와와를 개 취급도 안해줬으니까요. 처음 봤을때도 "뭐 이렇게 생긴게 다 있지?"하고 약간은 징그러운(?) 눈으로
쳐다 보았습니다. 개같이도 보이고, 여우 새끼 같이도 보이고, 좋게 말하면 눈 때문에 사슴같아도 보이고... 옅은 갈색의 털을 가진, 뿅족한
귀와 크고 동그란 눈... 멀리서 보면 눈 2개와 밤색 코만 반짝 반짝 빛나 보였죠...
처음에 집에 와서는 방향 감각이 없는지 제
방에 들어와서 글쎄... 용변을 보는 거였어요. 그래서 더 싫어하게 됐습니다. 전 "래시"같은 큰 개를 원했는데... 막 장난도 치고, 공도
던지면 주워 오고, 등에도 올라탈 수 있는 그런 개를 원했는데... 그런데 미미는 너무 작고 가녀리게 보여서 잘못 만지면 죽을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했던 마음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니까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서서히 정이
들게 되어지더군요. 한번은 미미를 데리고 온 후 한달쯤 지났을까요? 어머니께서 예전 주인 집에 미미를 목욕시키고 이쁘게 단장시킨 후
놀러갔습니다. 그런데 주인 아저씨가 약간 술이 들어가셔서 미미를 보자마자 옛 주인의 정이 되돌아왔는지, 다시 돌려달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할 수 없이 놓고 오셨죠. 자- 저와 제 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온 후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 그래도 남자라서 그렇게 티는 안 내고 ^^
그냥 뒷정원에 가서 미미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밥 그릇만 허탈하게 쳐다보고 있었고, 제 동생은 울고 불고 난리가 났죠. 할 수 없이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미미를 다시 받아 오시게 되었습니다. 전주인 아주머니께서 남편이 술 기운에 그렇게 행동해서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바깥에서
미미 장난감 만지작 거리다가 어머니께서 "얘- 미미 다시 준데~"하는 말씀 하실 때 너무 기뻐서 활짝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왔던 기억이 지금 참
생생하네요...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온 후 저와 제 동생의 성장 과정에 미미는 항상 함께 했습니다. 시간이 좀 흐르자 저희
미미는 당연하게 저희 집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꼬마 아이들은 저희 집을 기억할때 "미미 있는 집"으로 기억하게 되었고, 저희 할머니와
어머니를 "미미 할머니, 미미 아줌마~"로 호칭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있던 첫 날 부터 꾸준히 매일 아침에 우유를 마심으로써 미미는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미미는 우유가 무척이나 좋았나봅니다. 아기같이 잘도 홀짝 홀짝 마셨죠. 예전의 주인 집이 아파트라서 그랬는지도 몰라도
"가자~~!"라는 말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산책 시간이 되면 벌써 자기가 저희들이 있는 곳으로 옵니다. 그때 미미 보고 "미미야~ 갈래?
갈까?" 하면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좌우로 한번씩 기우뚱하게 쳐다봅니다. 미미가 무슨 말을 열심히 들을려고 할 때 하는
동작입니다. 그러다가 "가자!!!"하고 한번 외치면 좋아서 막 흥분을 합니다. 한밤중에도 "가자~~~"하면 벌떡 뛰어 나오곤
했죠...
근 10년동안 미미와 함께 산책을 할때, 저는 나이를 먹어도 미미는 마치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미미를 보면 "어머- 저 강아지 봐~~~"하는 말을 계속 10년동안 했으니까요...
미미에 관한 기억은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저한테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바로 고1때 학교 갈려고 집을 나섰는데, 미미가 절 쫓아온 일이였습니다. 학교 갈려면 약 7분간 걸어서
버스 정류장을 갔어야 하는데, 거길 갈려면 꽤나 복잡한 큰 도로 하나를 지나야 합니다. 아침에 늦어서 허겁지겁 집을 나서는데, 앞정원 손질을
하시던 할머니 옆에 미미가 있었습니다. "미미야 잘 있어-"하고 인도로 나섰는데, 미미가 따라왔습니다. "안돼! 너 다시 들어가!"하고 한번
호통치니까 멈칫하고 문 앞에 서 있더군요. 그리고나서 버스를 놓치지 않을려고 막 뛰어갔습니다. 약 5분 후 큰 도로를 건넌후 계속 뛰고 있는데,
뒤에서 낯익은 소리가 나는 것이였습니다. 바로 미미와 산책할 때 들리는 개 발자국 소리... "설마..."하는 맘으로 돌아보니 미미가 열심히 제
뒤를 쫓아오는 것 아니겠어요? 얼마나 놀랬는지... 화도 났습니다. 학교에 늦었는데 이제 얘는 어떻게한담??? 그나저나 그 차 많은 도로를
어떻게 죽지 않고 건널 수 있었을까??? 차에 치었으면 어쩔려고... 약간 짜증나게 미미를 확 잡고 다시 집까지 가는 수 밖에 없었죠.
할머니한테 개 좀 잘 보고 있으라고 화난 목소리로 소리 한번 꽥 지르고 나서 다시 또 뛰어갔습니다...
그거 외에 참 많은 기억들이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 조그만하게 겁은 없어서 자신의 50배 정도 되는 큰 개들한테 막 덤비던 일들, 그러다가 한번은 크게 물려서 끙끙대던
일; 탁구공만 던져도 무서워하던게 어느 날 쥐를 쫓아서 잡은 일; 뒷정원이 자신의 땅인양 마냥 새 한마리가 내려와도 마구 가서 짖어서 쫓아내던
일; 어머니가 앞발 내밀으라고 그렇게 가르쳤건만 뒷발 내밀던 모습; 차를 타면 무척 좋아해서 창문을 내리면 고개를 빼꼼히 빼고 바깥 바람 맞는
걸 좋아하던 모습; 입은 고급이라서 좋은 음식만 좋아하고 똑같은 식단을 계속 주면 단식 투쟁(?) 벌리던 일; 호주에 살면서도 한국말만 알아듣고
영어는 못 알아 듣던 미미; 여우 같이 사람 눈치는 알아채던 미미... 그렇게도 사람들과 있기를 좋아하고, 내 무릎 위에 턱 고이고 있던 것을
좋아하던 미미...
1년간 한국에 있다가 금년 8월 중순에 다시 호주를 돌아왔을 때, 미미는 절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기억하던 미미가 아니였습니다. 그새 몸이 많이 쇠하여졌죠. 고무공처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숨도 힘들게 쉬고,
기침도 심하게 하더군요. 밖에 나가는 것은 여전히 좋아했지만 멀리까지는 못가고 용변 보는 것 조차 힘들어 했습니다. 가족들이 그러길 저 오기
전에 미미가 죽는 줄로 알아서 미미 보고 "오빠 올때가지만 살아라~"하고 타일렀다는군요. 제가 온 후로 몸이 좀 나아졌다가, 다시 갑작스럽게 안
좋아졌습니다. 눈 앞에서 갑작스럽게 경련이 일어나 괴상한 소리를 지르고 사지가 마비되는 장면에, 정말이지 그때 마음이 찢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정든 이 집을 팔기로 결정했고, 경매 날짜는 11월 10일로 정해졌습니다. 집 이사 가는 것도 문제지만,
미미도 별도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병든 개를 어떻게 데려갈 수 있나? 수의사한테 찾아가서 안락사라도 시켜서 고통을 덜어주는게 주인으로서
해줘야 하는 마지막 도리는 아닌지... 막상 이 생각까지 오니 마음이 무척 무거워지면서도, 선뜻 그 일을 할 자신이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경매전의 주말에는 저와 동생이 심각하게 미미를 안락사 시키는 방법을 논의해 봤습니다. 제 동생은 그래도 저보다 용기가
있더군요. 끝까지 수의사를 따라가 미미한테 주사 놓아서 숨을 멈추는 숨간까지 계속 미미 옆에 있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야지 미미가 덜 무서워 할
것 같다고... 그 말을 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는데 저도 마음이 무척 착잡했습니다. 결국은 그 주말은 그냥 그렇게 논의만 하고 넘겼습니다. 경매
후에 생각하기로 하고...
11월 7일 일요일 오후에 날씨가 따뜻한 날, 미미가 제 방 앞의 베란다에 힘들게 걸어와서 햇빛을 쪼이고
있었습니다. 며칠전부터 이상하게 배가 딴딴하게 불러져서 보기에도 이상했고, 네 다리로 서 있을 때도 뭔가가 맞지 않게 보였죠. 몇 번 쓰다듬어
주다가 안아서 자기 집으로 데려다 주었죠.
그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본 미미의 모습이였고, 마지막으로 미미를 쓰다듬어 주게 된
날이였습니다. 11월 9일, 화요일,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부모님께서 부르시더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미미가 갔다..."
"예? 가다니요? 수의사한테 갔다 주었어요?"
"아니... 오늘 오후에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죽었어. 할머니께서 정오 좀 지나서 밥 줄려고 나갔는데 자기 집 옆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셨데. 아버지께서 뒷정원에 고이
묻어놨어..."
"..."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러면 안된다고 속으로 외쳤다.
마지막으로 한번이라도 봤어야 했는데,
이렇게 떠나면 안 되는 것인데...
뒷정원으로 나가서 미미가 묻힌 곳으로 갔다. 마지막으로 운 적이 기억이 안 나는 나지만, 그
앞에서 눈물이 핑글 돌았다. 울지 않을려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렇게 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미미가 있던 그 초록색 집으로 갔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왈칵 솟더니, 멈출수가 없는 것이였다.
얼마나 쓸쓸히 죽었을까...
그렇게도 사람 손길을 좋아하던 미미가 죽기
전에 얼마나 우리를 찾았을까...
월요일, 화요일, 일 나간다고 아침에는 바쁘다고 안 봤고, 퇴근후에는 피곤하다고 안 보고...
나도
참 못된 놈이구나... 아침에 한번이라도 가서 쓰다듬어 줬으면 이렇게 마음이 안 아플텐데... 일요일 오후에 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미미는 정 주고 키운 첫 애완 동물이였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그런 개가 아니였지만, 결국은 내가 바라던 그
이상의 개가 되주었습니다.
마치 나의 한부분이 죽어 버린 기분이 들게 되었습니다. 같이 뒹굴면서 놀 수 있는 개는 아니였어도, 짖꿎은
장난을 할 수 있는 개는 아니였어도, 영화처럼 공이나 비행 접시를 받는 개는 아니였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추억을 안겨준
친구였습니다.
미미는 끝까지 영리한 개라는 생각이 듭니다.
집이 경매에 들어가기 하루 전에, 아무에게도 폐 안 끼치고 자신이
혼자 조용히 떠나 주었으까요.
살아서도 영특하더니 죽을 때가지 영특한 그런
개였습니다.
...
...
...
하나의 개에 불과한 존재에서, 난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다.
미미는
커다란 행복에 연연하지 않았다. 작은 상자 하나에 들어가는 것에도 즐거워했고, 자기한테 못해줘도 곧 잊고 다시 찾아주었다...
반가운
사람이 오면 먼저 자신이 찾아와서 정말 진심으로 반겨 주었다. 개의 꼬리 흔듬에는 거짓이 없다는 말은 정말 사실이다...
개가 죽음에도
이렇게 슬퍼하니, 정말로 아끼는 사람이 죽으면 어떨까...
개가 죽었을때도 자신이 못해준것에 깊은 후회를 하니, 사람이 떠나면
오죽할까...
지금도 집에 오면, 이쁜 눈을 가진 연한 갈색의 강아지 같은 개가 와서 반겨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뒷정원에
가도, 집안 어디를 봐도 미미의 흔적이 있어서 문득 문득 생각나게 만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곧 이사하는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뒷정원에 미미를 남겨두고 간다는 것에 마음도 아프다.
누가 뭐래도 우리 미미는 명견이였다...
벌써 "~~~이였다"라고
과거형을 쓰는게, 참 기분이 그렇다...
난 이제 "개 같은 놈"이라는 말은 하지 않을테다. 욕이 아니라 칭찬같이
들릴테니까...
나도 한번 개같이 살아볼련다 -
작은 것에 행복을 찾을 줄 알며, 거짓없이 사람을 맞을 줄 알며, 작은 섭섭한 일과
나쁜 일은 쉽게 잊어 먹을 수 있는, 그런 개 같은 사람이 되어보련다...
그럴때마다, 난 나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 준 명견 미미에게
감사함을 표할테고...
사랑하는 나의 개 미미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