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대의 낙서

껌값을 떡값처럼 여기기

CKChoi 2000. 11. 8. 07:28
얼마 전에 호주를 들끓게 한 일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달 넘게 모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한 정치인의 스캔들(?)이 있었지요.
그 사건의 전말은, 정치인들에게 주는 전화 카드에서 비롯 되었습니다.
일명 Telecard라 불리우는 그 전화 카드는, 어느 공중 전화에서도 돈 없이 통화
가능하게끔 하는 편리한 도구 입니다.
접속 번호에 연락하여 자신의 카드 번호와 비밀 번호를 입력하면, 그 통화 액수가
나중에 자신의 앞으로 청구 되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후불제로 낼 수 있는 전화 카드이지요.
해외 출장 시에서도 각 국가에서 현금 없이 통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정치인들은 공적인 일로 전화를 많이 쓰고 호주의 많은 곳을 누비니, 이 전화 카드가
제공된 듯 합니다.
그런데, 한 정치인이 이 전화 카드를 남용했다 하여 엄청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그 정치인은 한국으로 따지면 노동부 장관쯤 되는 Peter Reith라는 사람입니다.

그 장관은 호주 돈으로 지난 일 년간 약 5만불이라는 액수를 전화 카드로 사용했는데,
그것이 공적인 업무상으로 해서 생긴 요금이 아니라 그 액수의 상당수가 사적인
이유로 전화 카드를 남용 했음이 드러나 문제가 제기 되었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그 장관의 해임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국민들의 세금으로 결단코
사적으로 쓴 그 전화 비용을 댈 수 없음을 밝혀 결국은 그 장관이 자신의 돈으로
지불하게 하였습니다.

장관직에서 해임 되지는 않았지만, 그 장관에게는 치명적인 스캔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그는 모든 호주인들의 조롱 거리와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죠.

문제가 되었던 전화 카드 사용료 5만불 – 이것이 한국 돈으로는 약 3천만원 돈입니다.
모국의 좋지 않은 부분을 너무 크게 부각시켜서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한번 한국에 계신 분들에게 묻고 싶군요 –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과연 얼마만큼의 돈을 부정적으로 챙기는지요?
그리고 그것을 그냥 안일하게 바라보고 마치 삶의 한 부분처럼 여기는 우유부단한
이들은 얼마나 되는지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치인이 되어 금배지를 달고 국민이 부여한 자신의
작은 권리를 남용해 소위 뒷돈도 챙기는 부정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의 행위가 만약 발각 되면 보통 몇 십 억원 정도 되는 액수가 거론되어 집니다.
그들에게는 일 억원이 보통 “떡값”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죠.
그들에게는 그 호주인 장관이 곤욕을 치룬 3천만원 정도는 “껌값”으로 밖에 생각되어
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약 3년 전에도 몇몇 호주의 장관급 정치인들이 사적인 이유로 여행한 경비를
부당하게 마치 공적인 업무로 여행한 것처럼 하여 청구한 내역이 밝혀지자, 몇 주
간격으로 너무 강한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해당자 모두 사직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명은 너무 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결 시도를 하여 호주 사회 내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자결 시도 소식을 접한 야당 의원들은 바로 다음날 여당에 대한 공격을 그만 두었고,
사건은 종결 되었습니다.
이 때 당시에도 거론되어 지던 액수 역시 한국 돈으로 불과 몇 천 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몇 백 억원을 부당하게 삼킨 자들이 자살 시도는 커녕 당당하게 고개
들고 활보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비판하려는 자들에게 큰소리 치며
위세를 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새 국민들도 간혹 신문을 도배하는 부정 재산 축재나 비리에 대해서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하도 많이 몇 백억, 몇 십억 하는 액수가 거론되어서 숫자 개념도 아련하게 되어진
것 같습니다.
삼풍 백화점, 성수 대교, 가스 폭발 사건 등 너무나 큰 사건들을 접했기 때문에
왠만한 사고 소식에는 놀라지도 않는 반응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작은 스쿠터에 가스통이나 소형 냉장고를 싣고 유유히 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저는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와- 저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그러한 풍경이 익숙한 듯 놀라지도 않고 그 스쿠터 탄
젊은이처럼 유유히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마치 저에게 “뭐 저런 것을 가지고 놀라나?” 아니면 “지금껏 별 문제 없는 것
같은데 왜 문제 삼나?”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작은 것에 하나씩 타협하다가 너무 많이 뒷걸음 쳐서 지키고 설 가치관의 영역이
좁아진 것은 아닌가 두렵습니다.
부정한 정치인들도 아마 처음에는 몇 십만원의 돈에서 출발하여 결국은 몇 백억원
이라는 액수를 챙기게 된 지도 모릅니다.
세미한 것은 그냥 넘기고 대강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서 커다란 대형 사고가
일어나는 지도 모릅니다.
성의 개방화를 외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모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조금씩
타협하다가 원조 교제라는 더러운 산물이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호주에 살면서 저 역시 그러한 가치관의 무너짐을 접해 보지만, 적어도 얼마 전에
이 곳 정계에서 일어난 전화 카드 스캔들(?)을 보면서 아직 호주인 정치인들과
국민들은 한국에서는 껌값처럼 여기는 것을 떡값처럼 여기고 호들갑 떠는 모습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살아 가면서 타협은 분명 필요하지만, 꼭 지키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도 타협하다가
결국 타락과 퇴락으로 이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음을 겸허히 받아 들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껌값을 떡값처럼 여기고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을 타협하는
이들에게 용감히 맞서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껌값을 떡값처럼 여기고 호들갑을 떠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지금보다 더 많다면,
지금보다 더 밝고 더 많은 이들이 원하는 그러한 모습의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동안 내가 껌값이라 생각하고 무시한 것들은 과연 무엇인가?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고 뒷전에 둔 가치관이나 생각들은 과연 무엇인가?
그러한 것들을 앞으로 끄집어 내는 작은 용기를 오늘 한번 내 보겠습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