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대의 낙서

회복의 성탄절

CKChoi 2002. 12. 24. 23:03

진부한 표현이지만,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저물어 간다.

지난 주말에 문득 생각해보니 금년에는 예년보다 적게 우편으로 성탄 카드 및 연하장을 보낸 것 같다.
간편하게 이-카드로 대체하겠다는 나의 게으름이 큰 몫을 한 것 같아 좀 씁쓸하다.
그런데 막상 오늘 내 멜 주소록을 열어보니,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이-카드 보내는 것도 커다란 일이 될듯 싶다.
역시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다시 느낀다.

지난 주 교회에서 “손”을 주제로 한 짧은 무언극을 하였다.
원래 인간들은 좋고 아름다운 일을 하기 위해 손을 사용했다.
창조를 위한 손, 돕기 위한 손, 방어하기 위한 손, 주기 위한 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우리의 손들은 전혀 반대의 일을 하게 되었다.
파괴하는 손, 묵살의 손, 공격하는 손, 빼앗는 손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손 뿐이겠는가?
몸의 각 지체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할때 일어나는 여러 상처와 아픔들은 얼마나 더 많은가?
혀를 다스리지 못해 말로써 상처를 주는 일은 허다하게 일어난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일으키는 크고 작은 분쟁은 또 어떠한가?

지금 성탄절을 앞둔 이 순간에도 내가 살고 있는 호주를 바라볼 때 여러 아픔들이 있다.
발리섬 테러 이후 호주 전역에 퍼진 테러에 대한 불안감,
무더위로 인해 일어난 큰 산불과 가뭄으로 인한 농촌의 막대한 피해,
소외된 곳에서 항변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불법 이민자들의 한숨…
차마 이곳을 “지상 천국”이라 칭할 수 없는 이 땅의 어두운 면들이다.

나의 모국 대한민국은 또 어떠한가?
혼란스러웠던 대선을 마쳤으나 대화합의 정치가 펼쳐질 수 있을지 의문이고,
북의 핵무기 소유 문제 및 여중생 사망으로 인해 악화일로로 내딛고 있는 반미 감정…
또한 지구촌 각지의 모습은 어떠한가?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위기가 이라크를 감돌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의 지긋지긋한 유혈논쟁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난 아주 오래전부터 시드니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꿔 왔던 사람이다.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지만, 아름다운 시드니 항구를 배경으로 눈이 내리는 모습을 즐겁게 상상하곤 하였다.
아마 나는 어린 시절 한국에서 보낸 겨울의 크리스마스가 너무 인상 깊게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호주에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하지만, 이곳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왠지 모르게 정감있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는 눈을 기대하며, 추운 겨울 공기를 입김으로 후후 불며,
얼은 코와 귀를 털장갑으로 문지르면서 뜨꺼운 호떡이나 군고마로 입안을 녹이면서 보내야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드니 뿐만 아니라 온세상에 크리스마스 하루만 눈이 덮였으면 좋겠다.
그 모든 아픔, 추한 모습들, 상처와 눈물이 눈으로 모두 하얗게 뒤덮어졌으면 좋겠다.
아니, 뒤덮히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눈이 덮힌 모든 곳에 회복의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파괴하는 손이 다시 창조를 하고, 외면의 손이 서로 돕고, 빼앗는 손이 다시 주는 손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오해가 있는 곳에 이해가 넘치고, 차별이 있는 곳에 공평함이,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이,
전쟁의 수근거림이 있는 곳에 평화의 외침이 울렸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탄절의 참 의미이자 성탄절 원래의 메세지가 아닐까?

칼럼 가족분들 – 각자 계신 곳에서 회복의 성탄절 맞이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