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대의 낙서
"실례합니다"라고 말하기
CKChoi
2000. 8. 14. 16:23
호주에 완전히 정착을 한 후, 한국에 다시 들어가 본 것은 93년도, 대입 시험을 마치고였습니다. 그때에도 그냥 놀러가는 기분으로 약 2주가 좀 넘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98년 8월, 대학을 졸업한 후, 저에게 한국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로써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전 그 당시에 상당히 심적으로 어지러운 상태였습니다. 대학은 졸업하였지만 억지로 졸업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 처음 들어갔을 때 전공이 흥미로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습니다. 막상 진로를 바꿀려고 하니 앞은 막막하고... 그래서 우선 졸업은 하였습니다. 하지만 졸업 후 전공을 살리는 직업이나 직장 구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죠. 마음에 맞는 다른 학업- 할 수 있으면 대학원 과정으로-을 찾아 볼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 당시 전 무척 심적으로 피곤한 모양이였습니다. 모든게 귀찮고, 삶에 의욕이 없었죠. 그냥 가정, 시드니 사회를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그럴때 한국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를 모집하는 것을 알았고, 영사관에 신청을 하였습니다. 나름대로 그 당시에 전 제 길을 찾아보고 싶어했고, 혼자서 여길 벗어나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또 이것은 젊은 나이에 무척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신청을 하였는데, 운이 좋게 뽑히게 되어서 98년 8월 16일,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저희 집은 원래 친척이 별로 없습니다. 아버지 밑으로 남동생 하나이시고, 어머니는 외동딸이십니다. 할아버지 두분이 모두 6.25사변 때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작은 아버지는 가족이 좀 많아 제가 가기엔 집이 비좁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도착하여 호주에서부터 잘 알고 지내던 한 누나네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죠. 서울에는 98년 8월 17일 아침에 도착하였습니다. 오자마자 목동의 누나네 집에 짐을 내려놓고 명동, 남대문 시장을 구경하였습니다.
한국에 오자 마자 느낀 첫 인상은, 무척 덥고 습한 날씨였습니다. 얼마전 큰 물난리를 치루어서 그런지 더위보다 못 참는 건 습도였습니다. 호주도 무덥기 하지만, 습하지 않고 건조하기 때문에 참을만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더위는... 음~~~ 저 같이 땀 많이 나는 사람한테는 견디기 힘든 보이지 않는 적이였습니다.
비록 고국이지만, 김포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매우 낯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좀 신기한 듯이 외국(?)에 구경나온 것처럼 두리번거렸죠. 바깥에 나와보니 주위에서 보이는 산등성이들... 참 이뻐 보였습니다. 호주에선 지평선만 보고 자라다가, 오랜만에 눈을 들면 산이 보이는 곳으로 오니 참 반가웠습니다.
한국에서의 문화 충격들(?)은 공항을 벗어나오면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시각적으로 벌써 비좁아 보이는 땅, 여기저기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층 아파트, 수많은 차량들과 교통 체중... 이 모든 것들에 괜히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죠.
가장 큰 문화 충격은 명동, 남대문 시장을 갔을 때였습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제 주위에 한국 사람들만 모여 있다는게 참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좌우를 봐도 한국 사람, 앞뒤를 봐도 한국말 하는 사람들... 또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큰 군중이 괜히 두렵기까지 했어요. 간혹 미국 사람같은 외국인이 보이면 그냥 반가운 마음도 들더군요...^^ 너무 신기해서 그냥 가만히 서 있어서 제 주위를 살펴보고, 지금 한국에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스스로 자각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 복잡한 상가 골목길을 걸으면서 느낀 또 하나의 문화 충격은, 사람들이 무지하게 빠르게 걷는다는 것과 그들의 불친절(?)함이였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다고는 하지만 제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가는게, 전 좀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하다 못해 제 신발을 밟고 지나가는데 본체 만체하고 지나가더군요...
호주에선, 그리고 웬만한 영어권 국가에서 아마 제일 많이 쓰여지는 문장들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
"Excuse me."
"I'm sorry."
"Thank you."
호주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느긋한 여유가 있고, 유머 감각이 있고, 사람들이 투박하면서도 소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작은 일에도 위와 같은 문장을 자주 말합니다. 좁은 복도에서 사람들과 마주칠 때 서로 "Excuse me"하고 지나가고, 몸이 부딪치지 않아도 "I'm sorry"라고 잘 말합니다. 그들은 작은 것에도 "Thank you"라고 말할 줄도 압니다. 가계에서 작은 거스름돈을 건네 받을 때에도 "Thank you"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곳에서 오랫동안 자랐다가 서울에 오니, 절 툭툭 치면서 아무말 없이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솔직히 무지하게 황당했습니다. 처음에는 습관적으로 오히려 제가 사과할려고 말을 꺼낼려다가 그들이 휙- 지나가서 그럴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제일 무서운 것은 작은 덩치의 아주머니들... -.-;;; 아줌마 부대의 "팔 휘젓으며 군중 헤쳐 나가기"는 과히 예술적이였습니다... 아마 청와대의 경호실에서 배워도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을 듯 싶네요. ^^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서 화기애애하게 살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보단 서로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물론 여기 시드니도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만, 아직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실례를 더 자주 구하고, 말로써나마 사과와 감사의 뜻을 쉽게 전합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도 호주 사람들의 그런 모습은 배우셨으면하고 조심스레 건의하고 싶네요.
작은 잘못에도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작은 잘못이라도 범하는데 두 번 생각하게 되실 겁니다.
남들에게 피해가 될 것 같이 보이기만 해도 "실례합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남들을 위하는 마음 씀씀이가 생기실 겁니다.
우러러 나오지 않는다 하여도 작은 것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참 치열한 생존 경쟁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이는 한국의 사회... 삭막하게 보이는 사회에 속해있다 보면, 사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삭막하게 변할 것 같습니다. 비록 짧은 말들이지만 위와 같은 말들을 서로에게 자주 하면 바쁜 삶 속에 약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거창한 것으로 사회 변혁을 외치는 것보다, 짧은 문장들의 생활화와 습관화로 주위 사람들부터 변화되면, 한국도 지금보단 더 훈훈한 사회가 되지 않을 까 싶네요.
다음에 한국 남대문 시장을 가서는 "실례합니다~"하며 길을 지나가는 아줌마들을 보기를 소원하며... ^^
하지만 그 때 당시 전 무척 심적으로 피곤한 모양이였습니다. 모든게 귀찮고, 삶에 의욕이 없었죠. 그냥 가정, 시드니 사회를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그럴때 한국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를 모집하는 것을 알았고, 영사관에 신청을 하였습니다. 나름대로 그 당시에 전 제 길을 찾아보고 싶어했고, 혼자서 여길 벗어나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또 이것은 젊은 나이에 무척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신청을 하였는데, 운이 좋게 뽑히게 되어서 98년 8월 16일,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저희 집은 원래 친척이 별로 없습니다. 아버지 밑으로 남동생 하나이시고, 어머니는 외동딸이십니다. 할아버지 두분이 모두 6.25사변 때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작은 아버지는 가족이 좀 많아 제가 가기엔 집이 비좁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도착하여 호주에서부터 잘 알고 지내던 한 누나네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죠. 서울에는 98년 8월 17일 아침에 도착하였습니다. 오자마자 목동의 누나네 집에 짐을 내려놓고 명동, 남대문 시장을 구경하였습니다.
한국에 오자 마자 느낀 첫 인상은, 무척 덥고 습한 날씨였습니다. 얼마전 큰 물난리를 치루어서 그런지 더위보다 못 참는 건 습도였습니다. 호주도 무덥기 하지만, 습하지 않고 건조하기 때문에 참을만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더위는... 음~~~ 저 같이 땀 많이 나는 사람한테는 견디기 힘든 보이지 않는 적이였습니다.
비록 고국이지만, 김포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매우 낯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좀 신기한 듯이 외국(?)에 구경나온 것처럼 두리번거렸죠. 바깥에 나와보니 주위에서 보이는 산등성이들... 참 이뻐 보였습니다. 호주에선 지평선만 보고 자라다가, 오랜만에 눈을 들면 산이 보이는 곳으로 오니 참 반가웠습니다.
한국에서의 문화 충격들(?)은 공항을 벗어나오면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시각적으로 벌써 비좁아 보이는 땅, 여기저기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층 아파트, 수많은 차량들과 교통 체중... 이 모든 것들에 괜히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죠.
가장 큰 문화 충격은 명동, 남대문 시장을 갔을 때였습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제 주위에 한국 사람들만 모여 있다는게 참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좌우를 봐도 한국 사람, 앞뒤를 봐도 한국말 하는 사람들... 또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큰 군중이 괜히 두렵기까지 했어요. 간혹 미국 사람같은 외국인이 보이면 그냥 반가운 마음도 들더군요...^^ 너무 신기해서 그냥 가만히 서 있어서 제 주위를 살펴보고, 지금 한국에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스스로 자각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 복잡한 상가 골목길을 걸으면서 느낀 또 하나의 문화 충격은, 사람들이 무지하게 빠르게 걷는다는 것과 그들의 불친절(?)함이였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다고는 하지만 제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가는게, 전 좀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하다 못해 제 신발을 밟고 지나가는데 본체 만체하고 지나가더군요...
호주에선, 그리고 웬만한 영어권 국가에서 아마 제일 많이 쓰여지는 문장들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
"Excuse me."
"I'm sorry."
"Thank you."
호주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느긋한 여유가 있고, 유머 감각이 있고, 사람들이 투박하면서도 소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작은 일에도 위와 같은 문장을 자주 말합니다. 좁은 복도에서 사람들과 마주칠 때 서로 "Excuse me"하고 지나가고, 몸이 부딪치지 않아도 "I'm sorry"라고 잘 말합니다. 그들은 작은 것에도 "Thank you"라고 말할 줄도 압니다. 가계에서 작은 거스름돈을 건네 받을 때에도 "Thank you"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곳에서 오랫동안 자랐다가 서울에 오니, 절 툭툭 치면서 아무말 없이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솔직히 무지하게 황당했습니다. 처음에는 습관적으로 오히려 제가 사과할려고 말을 꺼낼려다가 그들이 휙- 지나가서 그럴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제일 무서운 것은 작은 덩치의 아주머니들... -.-;;; 아줌마 부대의 "팔 휘젓으며 군중 헤쳐 나가기"는 과히 예술적이였습니다... 아마 청와대의 경호실에서 배워도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을 듯 싶네요. ^^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서 화기애애하게 살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보단 서로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물론 여기 시드니도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만, 아직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실례를 더 자주 구하고, 말로써나마 사과와 감사의 뜻을 쉽게 전합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도 호주 사람들의 그런 모습은 배우셨으면하고 조심스레 건의하고 싶네요.
작은 잘못에도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작은 잘못이라도 범하는데 두 번 생각하게 되실 겁니다.
남들에게 피해가 될 것 같이 보이기만 해도 "실례합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남들을 위하는 마음 씀씀이가 생기실 겁니다.
우러러 나오지 않는다 하여도 작은 것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참 치열한 생존 경쟁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이는 한국의 사회... 삭막하게 보이는 사회에 속해있다 보면, 사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삭막하게 변할 것 같습니다. 비록 짧은 말들이지만 위와 같은 말들을 서로에게 자주 하면 바쁜 삶 속에 약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거창한 것으로 사회 변혁을 외치는 것보다, 짧은 문장들의 생활화와 습관화로 주위 사람들부터 변화되면, 한국도 지금보단 더 훈훈한 사회가 되지 않을 까 싶네요.
다음에 한국 남대문 시장을 가서는 "실례합니다~"하며 길을 지나가는 아줌마들을 보기를 소원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