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영어 교사 (6) - 내가 본 학생들
울산 교육 연수원에 근무하면서 제가 행한 첫 수업은 저희 연수원 직원들에게 간단히 영어로 전화 받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근무하게 된 미국인 Barbara에게 혹시 영어로 전화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간단히 행한 수업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행한 수업은
연수원에 들어온 50명 가량의 남자 고등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은 좀 특별한(?) 학생들이었습니다. 연수원 프로그램 중 하나인
“푸른 꿈 교육”의 일환이었습니다. 참석 학생들은 학교 부적응 학생들, 다시 말해 소위 문제 학생들이었습니다. 다니는 학교에서 속수무책이라고
낙인 찍힌, 그런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런 학생들을 데리고 성심으로 마음을 열어서 가르치는 연수원의 연구사님들이 참 존경스럽게 보였습니다. 그
학생들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제대로 길을 제시해 보고자 노력하는 여러 연구사님들의 모습 속에서 숭고한 교사의 헌신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첫 “푸른 꿈 교육”이 시작할 때 연수원에 봉고차로 학생들이 도착했는데, 전 무슨 조폭(?)들이 온 줄 알았습니다.
덩치도 산만한 건장한 체격의 남학생들… 얼굴은 왜 그리 삭아(?) 보이는지… 누가 보면 군대 갔다 왔을 법한 나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처음에 그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행하려고 하니, 게다가 한국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첫 수업이었는데 소위
“문제아”(?) 학생들이었으니 난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난감한 기분은 수업 시간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둘째 날 수업이 있었는데, 절반의
학생들은 관심도 없다는 듯이 그냥 마음 편하게 책상에 팔 베개를 하고 잤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위엄(?)있게 자는 학생들을 깨우곤 하였는데,
아예 반응이 없는 학생들, 깨우면 잠시 일어났다가 제가 돌아서면 다시 자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때의 경험으로 배운 저만의
수업 방침이 하나 생겼는데, 굳이 배우지 않겠다는 학생들을 일일이 깨우고 다니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제 시간 낭비이고,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의
소중한 수업 시간도 축 내는, 별 소득이 없는 행동이라 판단이 섰기 때문이죠. 수업 진행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그들이 하고 싶은 데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나중에 울산공고에 가서 학기말을 맞이하는 고3학생들 수업 할 때도 위와 같은 정책(?)을 펼쳤습니다. 아무래도 공고 학생들이고,
학기말이라 이과 계통의 수업에는 통 관심을 보여 주지 않아 관심을 보여주는 학생들에게만 저 역시 제가 집중하였습니다.
교사로써
무책임한 행동이었는지요? 저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학생들을 억지로라도 끌어 당겨야 하지 않는가 하는 책임 의식이 절 괴롭혔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잠을 청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들을 한 명 한 명씩 깨우는 방법보다 깨어서 저에게 집중을 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수업을 펼치는 것이
최선이 아닌 차선의 방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 되어 교사들도 포기한 학생들이 참석하는 “푸른 꿈 교육”. 그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연민의 정도 느껴지고 안타까움도 많이 느껴졌었습니다. 수업이 끝 나갈 즈음에는 이런 말로 마쳤습니다-
“날 형으로 생각하고 다음에 연수원 밖에서 만나도 서로 아는체하고 반갑게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에는 이런 프로그램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더더욱 좋겠다.”
그 중 몇몇 학생들은 실제로 그 후에 밖에서 절 만나면 “아- 형~~!”하고 인사하곤 하였습니다. 후에 여학생들이
참석한 “푸른 꿈 교육”에 한 여학생이 절 보더니 “제 쪼가리(남자 친구)가 연수원에 오면 선생님 만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제 쪼가리도 전에
푸른 꿈 교육 왔었는데 선생님 좋은 분이라는 이야기 들었어요.” 이러한 이야기 들었을 때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저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사실은 고마웠지만, 두 연인(?) 학생이 모두 “푸른 꿈 교육”에 사이 좋게(?) 참석하였다는 사실에는 왠지 좀 씁쓸한 입맛이
돌더군요.
연수원에서 지극히 제한적인 학생 접촉만 이루어 졌다가 삼일 여고라는 학교에 가서 학생들과 더 많이 접할 수 있어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은 이미 앞의 글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 후로는 교사 연수 중 친분을 쌓게 된 영어 선생님의 주선으로 울산 공고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연수원 근처에 있는 화진 여중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습니다.
여중과 여고는 참
많은 차이가 나더군요. 여고에서는 고1이건 고3이건 학생들간에 그리 큰 차이가 눈에 확연히 보이지 않습니다. 외면적으로 봐도 고1과 고3을
분간하기 힘들었고, 영어 수업을 진행할 때도 고1이라고 특별히 수업 진행 방법과 내용을 수정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중에서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중1 학생들은 막 초등학교를 졸업해서 그런지 확실히 키도 더 작았고 어려(?) 보였습니다. 중3 학생들과
비교하면 어린 아이 같이 보였죠. 수업을 진행할 때도 그 내용이나 방법 면에서도 대폭 변경해야 했습니다. 여중에서 가르칠 때 한 두 살 차이가
정말 무섭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고에서 가르칠 때도 여고생들이 순수하게 보였는데, 여중을 다니니 이건 완전
정화된(?) 순수 그 자체를 접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화분 속에 핀 작은 꽃송이 같기도 하여 잘 키우면 건강히 자라서 정원으로 옮길 수도
있으며, 잘못하면 꺾이거나 죽일 수도 있는, 여리고 작은 것에 영향 받을 수 있는 또래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여중생들을 바라 보며,
“푸른 꿈 교육” 참석 학생들을 생각하며 간혹 이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중1과 중3도 불과 몇 년 차이인데 이렇게 확연히 달라 보이니, 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어떤 모습으로 빚어져 있을까...
불과 몇 년 사이에 벌써 “문제아”라고 찍힐 정도로 변해 있는 것은
아닐지...
좋은 사람들 속에서, 좋은 친구들 속에서, 좋은 환경 속에서 올바르게 빚어질 수 있기를 속으로 빌었습니다.
지금 제
앞에서 보여지는 그 순수함을 전부 다 간직할 수 없어도 그것을 오랫동안 소중히 보관하길 소원하였습니다.
간혹 세상의 잣대가,
어른들이 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학생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인격체인 학생을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에 따라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 보고 쉽게
판단하는 모습을 한국에서 보고 느끼고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연수원에 어느 학교가 연수 받으러 들어오냐에 따라서도 연수원의
연구사님들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괜찮은 인문계 학생들이 오면 “이번 연수는 한번 해 볼만 하겠군!”하시고, 인문계 계통이 아닌, 소위 “알아주지
않는 학교”의 학생들이 연수를 오면 일부러 초반에 기합부터 잡을려고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더 크게 보시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OO학교 아이들이니 이 정도 밖에 안되지!”하시면서...
벌써 어느 학교에 다니냐에 따라서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에, 저는 왠지 모르게 좀 서글퍼 졌습니다. “푸른 꿈 교육” 때 본 학생들도 과연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는 몰랐어도, 제가 보기에는 본질적으로는 착하였고 십대 학생의 여린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공고에서 가르칠 때도 비록 수업 시간에는
졸았어도 나중에 대화를 해 보면 꽤 건강한 사고 방식을 지닌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삼일 여고에 갈 때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학교는 신설 학교이고, 중학교 때 중하위권 학생들이 들어가는 학교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수원 연구사님들이 “쯧쯧쯧- David 선생 거기 가면
고생 좀 할 거에요. 학생들이 별로 라서 문제도 많이 일으킬 것이고...” 그런데 제가 가서 경험해 보니 들은 바와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삼일 여고가 연수원에 들어와서 연수 받을 때에도 처음에 연구사님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일 여고는
99년 연수 받은 학교들 중 가장 모범적이고 우수한 연수 생활을 하였습니다. 오히려 의외라는 듯이 연구사님들이 놀라시더군요. 학교의 명성(?)
대로라면 분명히 말썽 꾸러기 였어야 하는데... 그들의 착하고, 고분고분하고, 모범적 생활은 학생들이 퇴소한 후에도 두고 두고 이야기 거리가
되었습니다. 연수 후에도 삼일 여고 학생들은 자신의 담임 연구사님들께 감사의 편지들을 보내서 연구사님들을 감동시키고 흐뭇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삼일 여고의 정식 교사는 아니었어도 그들을 예전부터 알았기에 그들의 그런 행동에 왠지 모르게 제가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전 화진
여중에서 가르칠 때 학생들을 “딸들아~~~”라고 부르며 귀여워 했습니다. ^^ 고등학생들보다 더 나이 차이가 나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하고는 좀 더 스스럼 없이 지냈던 것 같습니다. 함께 단체로 분식집에도 가고, 집에도 초대하고 그랬습니다.
그들에게 간혹 약간
우려 섞인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발 이 학생들은 모두 사랑을 많이 받고,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학교 출신이냐에 따라 너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는 그런 사회에서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십대의 학생들은 주위의 환경에
따라 빚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든 간에 더 이상 아픔 받는 학생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학생들로 인해 가슴
아파하는 교사들과 어른들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학생들을 인격체로 보고, 그들과 대화하여 사람됨을 알아보고, 그들의 출신 학교에 따라 구분
짓는 모순된 사회가 아니었으면 더더욱 좋겠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사진 설명: 99년 화진 여중의
학생들과 함께. 두번째 사진은 방학 기간의 영어 회화 반에 참석한 중2 학생들과 함께 찍은 것입니다. 방학 기간이라 사복을 입고 있습니다.
이들은 저와 딱 10년 차이 나는 학생들이죠. 이 학생들은 제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순수함이 많이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밝고 모순이
많이 사라진 사회 속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